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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예산처가 본격적인 기금 정비 작업에 돌입하자 관련 부처와 기금 관계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57개 기금의 절반 이상이 장기적으로 통ㆍ폐합될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폐지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금이 많은 일부 부처는 벌써부터 기금평가단이나 예산처를 상대로 설득 및 홍보작업에 나섰다.
나머지 부처들도 기금 유지를 위한 논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중앙 부처의 한 관계자는 "손아귀에 있던 기금 운용 자금을 순순히 포기하려는 부처는 아마 없을 것"이라며 "정비 대상 기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반발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쪼그라진 부처 주머니
예산처 내부자료(기금제도 잠정 정비방안)에 따르면 운용하던 기금을 단기간에 줄여야 하는 부처는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 국방부 등 12개 부처.
이 중 현재 10개의 기금 보따리를 갖고 있는 재경부는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많은 5개 기금을 털어내야 한다.
농림부는 6개 기금 가운데 농지관리기금과 축산발전기금 등 2개가 정리 대상에 올랐고, 외교부는 국제교류기금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문화부는 국민체육기금 등 4개 기금을 2개로 묶어야 한다.
이밖에 국방부(3개→1개) 과학기술부(2개→1개) 보건복지부(3개→2개) 환경부(4개→1개) 등도 몸집 줄이기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 "섣부른 기금 폐지는 곤란"
예산처의 기금 정비 방안에 대한 각 부처의 첫 반응은 대체로 "너무 이상적"이라는 것.
한 정부 관료는 "기금 평가를 교수나 연구원들이 담당해 이론적인 부분에 치우친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기금마다 여러 이해 당사자가 걸려 있는 만큼 섣불리 손을 댈 경우 예기치 못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경부 산하의 기술신용보증기금이 대표적인 케이스.재경부 관계자는 "기술신용보증기금은 다른 기금과 달리 별도의 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금 폐지 방안이 인력 구조조정 문제로까지 확산될 경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금 정비 방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예를 들어 외국환평형기금은 정부의 환율 방어가 전혀 필요없는 시점이 돼야 폐지할 수 있는데 그날이 언제 오겠느냐는 것.
기금을 통ㆍ폐합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특별한 재원 없이 운용되는 두 기금을 하나로 합쳐봐야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 "최대한 밀어붙인다"
기금 정비 방안이 확정되려면 아직 4개월 이상 남았지만 벌써부터 예산처와 기금평가단에는 물밑 홍보 작업이 한창이다.
기금평가단의 한 교수는 "평가 결과가 조금씩 알려지자 기금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려는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 온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예산처 관계자는 "기금 정비 작업은 배 밑바닥에 붙은 조개를 떼어내는 작업과 같다"고 설명했다.
떼고 나면 또 붙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만큼 끊임없는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것.
그는 "재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누군가 앞장서서 지속적으로 기금에 압력을 가하고 전체 기금이 나아갈 방향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