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함께 가는 개혁..정기홍 <서울보증보험 사장>

정기홍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개혁'이다.그만큼 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30∼40년 동안 경제의 큰 기둥을 일으켜 세우는 데 앞만 보고 달려왔다.

주변을 아우르거나 성장의 부작용을 정비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그러는 사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편리한 사고와 관행이 깊숙이 자리하게 돼버렸다.

타락한 물질주의가 우리의 멋진 선비의식을 마비시켰고,야박한 기술주의가 정서의 고갈을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돈은 좀 벌었으나 가치관이 천박한 사회가 되어가는 듯도 싶었다.그러던 어느날 외환위기가 급습했고 이 기회를 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IMF 위기는 우리에게 경고이자 선물이었다.

상수원에 퇴적물이 쌓여 썩게 되면 더 이상 수돗물로 사용할 수 없듯이 사회 내부에 폐해가 쌓이면 그 사회는 곧 무너질 수밖에 없다.그래서 허겁지겁 개혁에 착수했다.

오염된 상수원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을 깨끗하게 하고,저수지 바닥에 쌓여 있는 썩은 뻘의 준설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정화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수돗물 공급에 차질이 생기듯 개혁 또한 진행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대로가 편한 기득권세력에게도, 더이상 잃을 게 없어 보이는 빈민층에게도 고통이 부과됐다.

부담해야 할 고통은 즉시적이고 직접적인 반면 개혁에 따른 이득은 장기적이고 간접적이어서 저항도 심하게 마련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개혁은 꼭 이뤄져야 한다.

개혁이 어렵다고 중도에 그만 두는 것은 중병에 걸린 환자가 일시적 아픔을 참지 못하고 수술을 포기,목숨을 잃는 우를 범하는 것과 같다.

수술을 통해 아픈 곳이 치유되고 새살이 돋아 나듯이 개혁의 성과도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이익으로 분배될 것이다.

청년실업의 증가,주택경기의 위축같은 전환기적 마찰을 견디지 못해 개혁의 본질을 무시하거나 내팽개치려 해서는 안 된다.

내일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정치적으로 정서적으로 싫은 집단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잘한 일은 잘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용기와 솔직함도 있어야 한다.개혁의 추진 방법 또한 저항이 크다고 해서 과격해지거나,과거 부정적이거나,단절적 행태를 띠어서는 안 된다.

멀리 그리고 전체를 볼 줄 아는 시각과 안목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