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상담만 30~40건 넘어요" ‥ 신용불량자의 현주소

"아 김명진씨(가명), 추심원이 집이나 근무지로 자꾸 찾아오는 건 불법입니다. 금감원에 고발하겠다고 하세요. 그건 정당한 권리입니다. 네? 개인회생과 파산의 차이가 뭐냐구요?"

지난 22일 오전 9시 서울시 중구 명동.신용회복위원회 빌딩 맞은편 건물에 있는 오명근 변호사(32)사무소.평소처럼 오 변호사는 출근해 의자에 미처 앉기도 전에 신용불량자 등으로부터 걸려오는 무료상담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수화기를 어깨에 괸 채 인터넷 카페(cafe.naver.com/recredit21.cafe) 무료상담까지 동시에 진행하던 오 변호사는 10여통의 통화를 끝내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오 변호사는 군법무관 시절 지인들에게 워크아웃,파산신청 등에 대해 조언을 해준 것을 계기로 무료상담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본업보다 먼저 챙기는 일이 됐다. 경기불황 등으로 개인파산 등이 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연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변호사에게는 요즘 신용불량문제나 불법추심에 대한 해결책 등을 상담하는 전화가 하루 30~40통씩 걸려온다. 상담자는 술집여종업원에서부터 대기업 기획실 중역,치과의사 박사 대학생 주부 벤처기업사장 등 그야말로 다양하다. 그만큼 불황의 골이 깊다는 반증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낮 12시가 넘자 또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점심시간은 은밀하게 전화상담을 할 수 있어 상담전화가 가장 많은 때. 전화를 건 사람은 뜻밖에도 L카드회사 추심원. 다른 카드사 추심원으로부터 빚독촉을 당하다가 '못살겠다'며 법적 대응방법을 물어온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빚을 독촉하는 추심원도 빚보증 등을 잘못서면 신용불량시대에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 같네요."

추심원과 전화상담을 끝낸 오 변호사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오 변호사는 펑펑 쓰고 난 후 배째라는 식의 모럴해저드도 문제지만 장기불황과 개인파산시대에 보증제도에 대한 현실적인 제도보완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번은 빚보증 2억원 때문에 망한 남자가 반포대교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궁금한 게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어요. 자살하면 두딸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는지가 궁금하다는 겁니다."

그 남자는 '죽더라도 방법을 들어본 뒤 결정하라'는 상담 직원의 설득에 벗어놨던 신발을 도로 신었다. 현재는 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개인파산 신청을 준비중이다. 그는 변호사로선 드물게 신용불량자 3명을 최근 정식직원으로 채용했다. 신용불량자들로만 구성된 회사 설립도 구상중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