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까마귀

선입견과 편견은 한번 생기면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 뇌의 크기와 지능지수의 상관관계도 그렇다. 두 가지 사이에 이렇다 할 연관성이 없다는 수많은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뇌가 커야 머리가 좋다는 주장이나 속설은 사라지지 않고 떠돈다. '새대가리'라는 말도 새의 머리가 다른 동물보다 유독 작은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올해가 닭띠해여서인가. 연초부터 새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듀크대 에릭 저비스 교수팀에서 새들이 도구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수를 세고 속임수를 쓰며 수천 개의 씨앗을 다른 곳에 감춰뒀다 찾아내는 등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녔다고 밝힌 데 이어 이번엔 새들 가운데 까마귀의 IQ가 가장 좋다는 발표가 나왔다. 캐나다 맥길대 루이 르페브르 박사팀이 75년동안의 조류학 관련보고서 2천여편을 분석,'먹이 찾는 법'을 근거로 IQ를 매겼더니 까마귀가 가장 높더라는 것이다. 다음은 매과 왜가리과·딱따구리과 순이고,앵무새는 뇌가 큰 데도 IQ는 낮았다고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새도 머리만 크다고 똑똑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까마귀의 영리함과 영험함에 얽힌 일화나 신화는 많다. 신라 소지왕 10년에 까마귀가 나타나 신하들의 모반 음모를 알려줬다는 '사금갑조'(삼국유사)이야기는 까마귀의 예지력을 드러내는 예로 널리 알려져 있고 북유럽 신화엔 까마귀가 지혜와 기억을 관장하는 신 오딘,그리스 신화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까마귀는 참새목 까마귀과에 속하는 텃새로 산과 들 어디에나 살고,곡식과 열매 들쥐 파리 음식물찌꺼기까지 뭐든 닥치는 대로 먹는 잡식성이다. '오합지졸(烏合之卒)'이란 말이 생긴 데서 보듯 특정한 리더 없이 몇 마리씩 무리지어 휴식처와 먹이터를 정하고 아침 저녁 오간다. 뒤집어 보면 조직의 보호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증거라고나 할까. 오랫동안 새의 뇌는 뇌라고 보기 힘든 원시적인 신경세포 집합체이고 따라서 새들은 '머리 나쁜 동물'이며 까마귀는 기분 나쁜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까마귀의 IQ에 대한 발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얼마나 잘못되고 보잘것 없는 것일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