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권토중래
입력
수정
초패왕 항우는 유방과의 해하 결전에서 참패하자 강(烏江) 건너 고향으로 도망치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다.
수많은 부하를 잃고서 무슨 면목으로 혼자 살아돌아가 그들의 부모를 대할 수 있겠느냐는 이유였다.
1천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오강가에 선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이렇게 읊었다.
'병가의 승패는 알 수 없는 일/분함을 참고 욕됨을 견디는 게 사나이라/강동의 자제엔 인물도 많은데/흙먼지 날리며 다시 왔으면 어땠을지 알 수 없었을 걸(勝敗兵家不可期 包羞忍恥是男兒 江東子弟多才俊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捲土重來·한번 실패했어도 힘을 쌓아 후일 다시 도모함)'는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배우 이은주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두엄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세상을 등지기로 작정했을 때는 실로 절박했을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버틸 힘도 없어 죽음 외엔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됐거나 자신을 버린 세상 또는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은 문제의 해결책도 복수의 수단도 될 수 없다.
살다보면 끔찍한 저주인줄만 알았던 사태가 축복으로 변하는 새옹지마같은 일이 수두룩하고 제아무리 캄캄한 터널도 언젠간 끝난다.
거듭된 취업 실패,실직으로 인한 무서운 생활고,실연의 쓰라린 상처 등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같은 고통과 시련도 참고 때론 한걸음 뒤로 물러나 힘을 축적하면 분명 웃을 날이 온다.
영동선을 타보면 기차가 뒤로 가는 곳이 있다.
강원도 도계와 심포리 사이 나한정역과 흥전역 구간으로 65∼70도나 되는 경사 때문에 그대로는 올라가기 어려워 일단 후진해 가속도를 붙여 그 힘으로 밀고 올라가는 것이다.
뿐이랴.과천 서울대공원역에서 청계산을 오르다 보면 등산로 초입에 줄기가 철조망에 얽힌 나무를 볼 수 있다.
작은 가지가 철조망을 뚫고 들어간 뒤 나와 다른 철조망을 뚫고 자라는 동안 굵은 등걸이 된 모습은 생명의 강인함과 신비함을 일깨운다.
아스팔트 틈새로도 꽃은 피고,철조망을 뚫고도 나무는 자란다.
고통 없이 성장도 없다.
권토중래!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