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코끼리의 코만 보여주는 세태

성선경 이솝우화에 다섯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가 나온다. 다섯 장님이 각자 코끼리를 만져보고 코끼리가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첫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코를 만지고 굵은 밧줄과 같다고 하고, 두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만지고 곡식을 까부르는 커다란 키와 같다고 하고, 세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배를 만지고 벽과 같다고 하고, 네번째 장님은 다리를 만지고 굵은 기둥과 같다고 하고, 다섯 번째 장님은 꼬리를 만지고 뱀과 같다고 한다. 모두 다 맞는 얘기다. 부분적으로 보면 그 다섯 장님이 만져보고 비유한 표현들이 모두 옳다.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어느 누구도 코끼리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할 수 없다. 어찌 코끼리를 굵은 밧줄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코끼리가 기둥 같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강아지도 고개를 돌려 웃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장님도 아니면서 의도적으로 본질을 왜곡하거나 비틀어 숨기는 상징조작(象徵操作)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 코끼리의 코를 강조해 코끼리에게는 코만 있는 것처럼 부풀리거나, 귀만 부풀려 부각시키고 이를 호도하고 있다. 마치 전 국민을 장님으로 만들려는 듯 이것만 보라 한다.참 낯 뜨거운 일이다. 봄철만 되면 시내버스들이 임금인상을 위해 태업(怠業)을 하면서 내거는 구호는 준법운행이다. 어떻게 노동자 자신의 권익을 위한 태업으로 시민들의 생활에 불편을 주면서 이를 준법이란 말로 포장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직하게 쯦우리는 지금 임금인상을 위해 태업중입니다쯨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이 무슨 낯 뜨거운 속임수인가. 그러면 지금까지의 평상시 운행은 불법운행이었다는 말인가? 이런 일들은 도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럴듯하고 인기있는 가치들을 선점하기 위하여, 국민의 반응이 좋을 만한 정책이나 구호를 위하여 상징조작은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각종 복권(福券)을 만들어 온 나라를 복권공화국으로 어질러놓고, 서민들의 주머니를 노리면서도 쥐꼬리만한 복지정책을 내세워 호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온 국민에게 사행심을 조장하면서도 겉으로는 건전한 문화, 살기 좋은 사회, 혹은 복지를 내세운다. 코끼리의 코만 보여주고 코끼리에게 볼 것은 코뿐이라고, 아니 코만 있다고 호도한다. 담배가격 인상도 그렇다. 보건복지부와 KT&G가 금연효과를 둘러싸고 서로가 옳다며 상반된 견해를 내놓고 있다. 복지부는 최근 담배를 끊은 사람의 73%가 가격인상 때문이었다고 주장하지만 KT&G는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놨다. 지난달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1.4% 줄긴 했지만 이중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금연은 0.33%포인트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즉 담배를 끊은 사람의 70%는 건강을 위해서 금연을 한 것이고, 가격인상 때문에 금연한 사람은 24%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같은 사안을 두고 이렇게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는가? 그것은 서로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겠다는 계산된 행동이 만든 결과이다. 너희들은 이것만 보고 이것만 믿어라, 봐라 내가 한 일이 옳지 않으냐 하고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장님이 아니다.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고 모든 사람을 잠깐 동안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이제는 어떤 그럴듯한 말들을 해도 그 진의가 무엇인지, 어떤 배경을 숨기고 하는 말인지 모든 국민이 의심을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 달라지자. 이제는 우리 모두 본질을 감추고 숨기는 상징조작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 저 양치기의 거짓말처럼 모두들 믿지 못하게 되면 그 때는 정말 어쩔 것인가? 또 이 말은 어떤 의도를 깔고 하는 말인가 하고 의심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믿게 하자.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본질을 호도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 우리 모두 한 마디 말에서부터 순수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