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문닫는 '토종 헤지펀드 1호']
입력
수정
국내 첫 토종 헤지펀드를 표방했던 리캐피탈투자자문이 출범 3년만에 문을 닫는다.
출범 당시 신종 사모펀드로 주목받았던 리캐피탈의 중도하차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남우 리캐피탈투자자문 사장은 8일 "리캐피탈을 이달말까지 정리키로 결정,현재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고객자산은 대부분 환매됐으며,출범 이후 2천5백만달러를 리캐피탈에 투자했던 세계 최대 헤지펀드 RMF도 지난 3월말까지 투자자금을 모두 회수해갔다고 그는 설명했다.
현재 싱가포르 법인에 머물고 있는 이 사장은 청산 배경에 대해 항간에 알려진 대로 "저조한 성과 때문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리캐피탈은 주로 저평가된 주식은 사고,고평가된 주식은 대주(주식을 빌려 일단 매도한 뒤 나중에 주식을 싼값에 되사서 갚는 기법)하는 '롱숏전략'을 이용해 3년간 연평균 10∼15% 정도의 수익률을 유지해왔다.
이는 고수익을 추구하는 국내 절대수익형 펀드 가운데 비교적 좋은 성과다.
리캐피탈은 이같은 운용성과를 인정받으면서 한때는 수탁액이 1천5백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이 사장도 "주가가 오르든 빠지든 상관없이 연 10% 이상의 절대 수익을 추구한다는 고객과의 약속은 지켜왔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그러나 "한국형 헤지펀드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헤지펀드'라고 하면 무조건 대박을 터트릴 것이란 선입견을 갖고 돈을 맡기는 투자자가 대부분"으로 "헤지펀드는 이름 그대로 헤지(위험회피)에 중점을 두는 펀드인데 국내에서는 투기성향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투자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에서 헤지펀드가 제대로 성장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또 "국내에서 헤지펀드가 정착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정부 규제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가령 헤지펀드엔 다양한 파생상품 구조를 이용하는 투자기법 활용이 필수적인데,국내에서는 운용사나 자문사가 감독당국 허가없이는 파생상품 운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외국에서 파생상품 운용을 허가받으려면 신청한지 불과 5분만에 답변이 오지만 국내에서는 수개월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이 사장은 "세계 헤지펀드들은 물론 미국 뮤추얼펀드조차 최근들어 무원칙한 초단기투자 성향으로 급속히 바뀌면서 당초 생각했던 헤지펀드 운용철학과 달라진 점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년간 한국형 헤지펀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매니저로 지내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당초 경력을 쌓아온 리서치 분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 사장은 리캐피탈 청산 후 5월1일부터 메릴린치로 자리를 옮겨 새출발할 예정이다.
메릴린치에서는 한국법인 리서치헤드와 일본법인 부대표를 겸임하게 된다.
이 사장은 지난 2002년 5월 리캐피탈 설립전까지는 대우 삼성증권 JP모건 동방페레그린 등 국내외 증권사에서 줄곧 애널리스트로서 리서치 분야에서만 일해왔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