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나는 제조업] "공장 옮기라지만 땅값 올라 갈데 없어"

고임금,노사문제에 이어 천정부지로 뛰어오는 땅값이 제조업투자를 가로막는 제3의 걸림돌이 되고있다. 공장 부지 51만평의 세계최대급 액정표시장치(LCD) 공장 공사가 한창인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탄현면 금승리 일대. 이곳 땅값은 최근 1년 새 30배 가까이 뛰었다. 자고 나면 값이 오른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LG와 필립스의 합작투자가 확정된 작년 초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지만 뛰는 땅값을 잡기엔 역부족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최근 삼성이 반도체 공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토지공사의 높은 땅값 요구로 곤욕을 치른 데서 보듯이 대기업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땅값 보상비가 겁나서 확장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파주에서 공장을 임대해 사업을 하고 있는 K엔지니어링의 황모씨(37)는 "땅 주인이 이사를 종용하지만 파주북쪽 연천까지 땅값이 너무 올라 해외로 가는 수밖에 없다"면서 "사업성격상 해외이전이 불가능해 폐업을 고려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LCD 협력단지가 들어서는 파주 북쪽 문산읍 당동지구는 토지 수용을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지방공사 문산LCD협력단지 보상사업소 전용각 팀장(47)은 "정부와 대기업이 국책사업 차원에서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알고 있는 땅주인들이 협조하기도 하지만 일부 터무니없이 높은 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면서 "보상이 일정 선을 넘을 경우 장기적인 국제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진퇴양난"이라고 털어놨다. ○퇴출되는 중소공장들 파주LCD와 한국국제전시장(킨텍스) 개발 여파로 인근의 중소기업공장들도 퇴출위기에 놓였다. 고양시 지역경제과는 "유·무허가 중소공장들이 4천여개에 달하는데 개발열풍으로 땅값이 오르자 땅주인들이 다투어 공장을 비우라고 독촉하고 있다"면서 "이들 중소공장들은 자유로를 이용해 서울에 납품하면서 연명하는 회사들인데 여기서 퇴출되면 사실상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방 이전을 권유하지만 사업성격상 소비지(서울)에서 멀어져선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곳에서 중개업소를 열고 있는 이정구씨(48)는 "이미 3백개 넘는 공장들이 철거됐다"면서 "집단적으로 대체부지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받아들여지지 않자 더러는 중국으로 가고 많은 업소들이 폐업을 했다"고 귀띔했다. 고양의 대표적인 공장 밀집지역인 식사동 가구단지 역시 인근 풍동택지개발 때문에 퇴출될 운명에 놓였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용인 제조업체들 용인 지역 제조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용인시가 최근 공장밀집 지역인 고림지구를 택지로 개발키로 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40여개 공장들은 모두 옮겨가야 하지만 인근지역의 지가폭등으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있다. 용인 행정타운 예정지의 공장들도 마찬가지다. 식품포장재를 생산하는 동성산업의 채무일 총무부장(55)은 "도로 등 기반 시설도 제대로 안 돼 있는 곳으로 사실상 강제로 내모는 꼴"이라면서 "물류비용이 훨씬 더 들 뿐 아니라 종업원들이 따라갈지 의문"이라고 호소했다. ○땅값이 제조업발전 최대 걸림돌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공단에 자리잡은 자동차 전자부품 제조업체 남경산업의 경우 수원에서 2001년 이곳으로 싼 땅을 찾아 이전해 왔다. 사세가 커지면서 공장을 확장해야 하는데 평당 1백20만원을 오르내리는 땅값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성시 정남면에 있는 금형 제조업체 ㈜유정산업도 수원의 비싼 공장임대료를 견디다 못해 이곳으로 왔지만 요즈음 이 지역 땅값이 폭등하고 있어 또다시 밀려날까 걱정이 태산이다. 이와 관련,화성상공회의소 김해성 사무국장은 "공장 부지 가격이 평당 1백만원을 넘어서면 기업의 채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동탄 신도시와 인접한 태안읍에 있는 미래정밀 황윤근 대표는 "주변이 주거지역으로 변화하는 속도를 봤을 때 이곳의 공장주들은 대부분 5년 안에 입지를 옮겨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예.노경목.이상은 기자 so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