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선생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무서웠다. 성적에 따라 개인별 기준을 정해놓고 시험점수가 그에 못미치면 어김없이 매를 들었다. 아프고 싫었지만 선생님이 밉진 않았다. 중학교 입시를 치러야 했던데다 갑자기 아무데나 후려치는 법 없이 맞을 대수를 일러준 뒤 엉덩이나 발바닥처럼 안보이는 곳을 때린 까닭이다. 중학교 때 노총각 국어선생님은 많은 아이들의 마음 속 연인이었다. 대머리에 키도 작은 분이었지만 국어의 중요성을 얼마나 강조하고 열심히 가르쳤던지. 내 글쓰기와 문법의 기초는 그때 다져진 것이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장학금을 주선해줬을 뿐만 아니라 형편 때문에 기 죽을까 여러모로 신경써 주셨다. 좋은 선생님만 계셨으랴. 개중엔 잘사는 집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애들을 눈에 띄게 차별한 선생님, 사정도 모른채 준비물이 부족하다고, 타고난 재주가 없는 무용을 못한다고 친구들 앞에서 공개 망신을 준 선생님도 있었다. 그래도 재수하는 동안엔 학원선생님의 격려를, 대학에선 원로 교수님의 배려를 받았다. 학창시절 선생님들이 보여준 사랑과 열정,공정함은 살면서 고단한 일 많았어도 지쳐 쓰러지거나 세상에 대한 원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만든 밑거름이 됐다. 자식의 해외유학을 위해 부부간 생이별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마당에 아이 둘을 이땅 제도권 교육에 맡기고 크게 걱정하지 않은 것도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 덕이다. 물론 학부형으로 만난 선생님 가운데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다.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반 아이들의 신상을 파악하지 못하던 선생님, 다른 아이가 괴롭힌다고 호소하는데도 모른 체 외면하던 선생님,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체벌로만 다스리려던 선생님, 수업준비가 너무 부실한 듯하던 선생님 등. 그러나 이런 선생님보다 좋은 선생님이 훨씬 더 많다. 가난한 제자를 위해 월급을 쪼개는 선생님부터 결손가정 아이를 위해 말 한마디도 조심하는 선생님, 아무 때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정신지체아의 손을 꼭 잡아주는 선생님까지. 뛰어난 실력에 따뜻한 마음과 지극한 열성을 지닌 훌륭한 선생님은 반듯한 개인, 풍성한 사회, 튼튼한 나라를 만든다. '스승의 날'을 기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