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8일자) 노조 정말 철저히 변해야 산다

노동계 꼴이 말이 아니다. 한국노총이 지도부 비리 때문에 국민에 대한 사과(謝過)성명까지 발표한 것은 참으로 실망스런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양대 노총의 또다른 축인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노선갈등과 폭력사태로 얼룩져 비난의 표적이 됐던 일이 바로 엊그제였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비단 상급단체만이 아니다. 일선 노조에서도 탈선과 일탈(逸脫) 행위가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통일중공업의 경우 새로 구성된 집행부가 노사합의를 전면 무효선언하고 경영진을 집단폭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현대차 기아차 항만 노조 등에서는 직원 채용 때 뒷돈을 받아 챙긴 지도부가 대거 구속되거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회사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같은 근로자의 등을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도대체 노조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계에 비상식적 비도덕적 행태가 만연하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노조의 힘이 지나치게 비대화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인상 때문에 정치권 등의 비호를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던데다 기업 입장에서도 툭하면 파업으로 산업현장이 마비되는 점을 우려해 노조의 비위맞추기에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틈을 타고 노조가 거대한 권력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비대한 권력엔 부패가 스며들게 마련이다. 또하나 중요한 원인으로 그동안의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근로자 위주의 집단이기주의에 치우쳐 온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근로자 임금이 지나치게 올라갈 경우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근로여건이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노조는 비노조 근로자의 권익신장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조합원 보호를 위한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돼 왔다. 노조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한 의식 약화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근본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젠 노동계도 정말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들의 여론이 더이상 노동계에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노조는 이제 약자가 아니라 사회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탓이다. 저성장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국민들은 국제경쟁력을 키워 국가경제가 되살아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더구나 해마다 비정규직이 80만명씩 늘어나는 등 노동시장의 현실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노조 지도부는 일부 대기업 조합원이 아니라 전체 근로자를 위한 대변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강경일변도의 폭력적 투쟁방식은 더이상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노동운동 자체의 생존조차 힘들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경제신문이 얼마전 '노조,이제는 변할 때다'라는 시리즈 기획물을 게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때문에 이번에 내놓은 환골탈태(換骨奪胎) 선언은 결코 말에 그치지 않고 뼈를 깎는 노력과 실천으로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