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운동 순수성을 되찾아라

이수영 내리막길의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기업과 노동조합이 변화를 고민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초부터 불거진 노동계 폭력사태와 채용 등을 둘러싼 비리,수뢰사건 등으로 경제 주체의 한 축인 노동계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론에 휩싸여 있다. 이와 관련해 "노동운동이 전체 근로자의 권익보다는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여왔다"든가,"정규직만의 노동운동으로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변하지 못했다"는 등의 내부진단과 자기혁신을 통해 거듭나겠다는 다짐도 수차례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현재 노동운동이 맞고 있는 위기는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당기간 누적돼온 총체적 문제라는데 노동계도 동의한 셈이다. 노사관계가 하루빨리 후진적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노동운동의 개선점을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이 약자라는 '주문(呪文)'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체 155만명의 노조원 중 300명 이상 기업에 속한 조합원이 76%에 달하고,이중 1000명 이상 대기업 조합원은 61%를 웃돌고 있다. 이들을 과연 취약계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조만의 생각일 수 있다. 둘째 경제적 조합주의로의 노선 설정이 필요하다. 과거 1970~80년대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급속도로 이뤄진 현 시점에서도 노동운동에서 '현 정권 퇴진' '국가보안법 철폐' 등의 정치적 요구가 내걸린다. 이것이 국민의 호응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최근 노동계는 '노동부 장관 퇴진'을 내세워 투쟁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동계의 정치적 요구를 앞세운 시위나 파업은 지금의 노동부 장관이 없었던 시기에도 매년 반복돼 왔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셋째 노동조합이 누려왔던 기득권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노조간부에 대한 전임자 급여,넓은 노조사무실,특별한 제재 없는 출퇴근,차량 제공 등의 특권과 특혜를 버리지 않는다면 '자기혁신'은 말에 그칠 수밖에 없다. 넷째 떼쓰기식 교섭,밀어붙이기식 투쟁 등의 구태의연한 방식을 버려야 한다. 경영계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민들이 최근 노동계의 잇단 파업을 연례행사처럼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일부 노조가 주장하듯이 해외 공장 신·증설시 노사합의,해외 부품 수입금지 등의 요구가 산업공동화를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은 단지 기대일 뿐이다. 다섯째 책임 있는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노조지도자의 덕목은 민주성만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과감한 결단력과 설득력도 필요하다. 정파의 안위만을 생각하거나,선명성 경쟁을 의식해 선동만 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든가,합의한 내용도 뒤집는 노조지도자는 기업이 파트너로서 받아들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결국은 조합원들로부터도 외면당할 것이다. 여섯째 고용안정과 개별근로자의 자질 향상을 위한 환경 조성에 주안을 둬야 한다. 독일이나 일본의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세계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이 이제 '임금'에서 '일자리'로,'근로조건'에서 '인적자원 개발과 직무훈련' 등으로 변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해 서울지하철과 GS칼텍스노조의 파업,올해 항공조종사노조 파업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비난여론은 이른바 '보수언론'이 조장한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노동운동'에 매몰돼 순수성과 도덕성을 잃어버린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노사관계의 또다른 한축인 경영계는 하루빨리 노동운동이 정상궤도를 찾아 생산적인 파트너십을 발휘해주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