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 세가족.2~3달전 입주는 '가짜'..경매투자자 '허위 세입자' 판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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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투자자인 S씨는 최근 서울 대림동의 아파트를 싼 값에 낙찰받았다가 곤욕을 치렀다.
32평형 아파트에 임차인이 두 명이나 됐고 이들이 이사비를 요구하면서 버텼던 것.이 아파트의 채권기관인 A은행이 가장(假裝) 임차인 소송을 통해 이들이 모두 '가짜'란 사실을 밝혀낸 후에야 S씨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서류상으로만 전입 신고를 마친 가짜 임차인들이 늘고 있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집주인과 짜고 최우선 변제금을 확보하기 위한 가짜 세입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집주인 묵인은 필수
가짜 임차인은 집주인의 묵인 또는 집주인과 짜고 발생하는 게 대부분이다.
우선 대항력을 높이기 위해 집주인이 가상의 임차인을 둬 경매를 지연시키려는 목적이 크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최우선 변제권을 노린 가짜도 상당수다.
전세 보증금 4000만원 미만의 임차인에게 원칙적으로 1600만원까지 우선 변제가 가능(서울 기준)한 법의 허점을 노린 생계형 범죄인 셈이다.
법무법인 산하의 강은현 실장은 "최근엔 경매로 넘어간 주택의 낙찰자를 찾아가 가짜 임차인 행세를 하고 일정액을 챙기는 전문 '꾼'들도 많다"고 전했다.
◆가짜 임차인 판별법은
전문가들은 경매물건 열람서 등을 자세히 뜯어 보면 가짜 임차인을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경매 개시일 2~3개월 전부터 집중적으로 전입했다면 가짜 임차인으로 의심해 볼 수 있다.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입자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개 서류상으로 임대차 계약서를 쓸 뿐 전세 보증금을 지급하지 않고 직접 거주하지도 않는다.
임차인이 집주인과 가족 또는 친인척 관계이거나 보증금 액수가 일률적으로 최우선 변제금액 범위 내에서 신고됐어도 가짜 임차인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밖에 주택 한 채에 세 가구 이상 임차인이 신고돼 있는 경우도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무조건 배제할 필요 없어
경매 낙찰자 입장에선 가짜 임차인으로 의심되더라도 무조건 배제할 필요는 없다.
가짜 임차인인지 여부를 채권자(보통 금융권)가 소송 등을 통해 가려주기 때문이다.
설사 가짜 임차인이 최우선 변제금을 배당받더라도 낙찰자에겐 전혀 손해가 가지 않는다.
다만 명도(집 비우기) 과정에서 이사 비용 등을 무리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영진 디지털태인 부장은 "가짜 임차인이 있다면 명도 저항과 경매 지연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실제 전세 보증금이 오고간 증거가 없을 경우 가짜 임차인을 비교적 쉽게 가려낼 수 있는 만큼 경매 낙찰자 입장에선 물건만 좋으면 굳이 입찰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