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더 필요한 선비들의 자식 교육법..'유학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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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했던가? 쏟아지는 책의 숲에서 손때 묻혀가며 곱씹을 만한 내용을 담은 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마당에 꼭꼭 잘 씹고 다시 되새김질하면서 지혜로운 삶의 지표로 삼기에 손색없는 문장이 책갈피 곳곳에 묻어나는 책을 만난다는 건 축복이다.
'유학경림(幼學瓊林)'(임동석 역주,전2권,고즈윈).제목이 낯설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주옥같은 이야기'라는 부제로 미루어 보면 처세명언집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유학(幼學)이라 했으니 어린이용 학습서인 듯하고 경림(瓊林)이라 했으니 '보물의 숲'이라는 뜻이 아닌가 짐작한다.
중국 명나라 선비가 자제들의 학습을 위해 짧은 대련(對聯)의 형식으로 엮은 이 책은 모두 1300여 조(條)에 이른다.
상세하게 붙은 주석이 때로 원문보다 더 재미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명심보감''채근담'이 나온 시기에 만든 책이다.
그러나 결코 유아용 도서만은 아니다.
문장은 짧되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천문지리에서 고금의 역사,인륜도덕과 문물제도에 이르기까지 단 두 줄의 단문에 옛사람의 지혜와 영혼이 옹골차게 담겨 있다.
중국전통 속의 문화와 상식을 다루지만 현대인에게도 그대로 통용되는 지혜의 결정체이다.
고전의 가치가 새롭게 각인되는 순간이 마냥 향기로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천하에 옳지 못한 부모란 없으며,세상에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 형제이다'(290조)라는 말은 수년간 전답 다툼을 벌인 형제 사이를 경계한 사례로 설명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자주 쓰는 어휘의 정확한 의미와 그 유래를 확인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지금은 부부 사이의 혼인이 깨지는 걸 '파경(破鏡)'이라고 하지만 그 원래 의미는 '부부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잠시 생이별하는 것'(329조)이다.
그리고 거울을 반으로 쪼개 나누었던 부부는 천신만고 끝에 다시 만나 옛정을 나누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한식(寒食)과 삼복(三伏),부마와 공주,각하(閣下)와 족하(足下) 등의 의미와 그 유래에 대한 설명도 어설픈 지식을 다시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하면서 '작은 지식의 확인을 통해 받았다는 감동'도 바로 이런 것이려니 공감이 간다.
사람이 책을 통해 존귀해질 수 있다는 교훈의 의미를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리게 된다.
각권 468,500쪽,1만9800원.
이준식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