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영웅적인 바보들

산업생산을 위해 쓰이는 부품, 소재, 장비 등을 가리켜 자본재라고 한다. 다른 산업들에 대한 영향력이 큰 분야다. 이런 자본재산업을 두고 누구는 바보같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굳이 바보가 되겠다고 나설 사람들은 별로 없을 테니 자본재산업에 대한 진입의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이 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만 하면 또 다른 바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상당히 오랜기간 독과점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실이 그렇다. 핵심적인 부품, 소재, 장비 등은 전 세계적으로 독과점 상태에 있는 것이 지금의 경쟁구도다. 그만큼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기술혁신과 축적이 있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한마디로 기술장벽이 높은 산업이 자본재산업이다. 선진국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결코 간과해선 안될 것은 이들 국가들은 자본재산업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안정적으로 획득하고 있고, 이것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재산업을 '선진국형 기간산업'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얼마 전 산업자원부는 8대 주력산업에 대한 상반기 수출실적과 하반기 전망을 내놨다. 올해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이 단일품목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300억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기계산업이다. 건설기계 공작기계 등 일반기계 수출이 상반기 104억달러를 달성한 여세를 몰아 올해 사상 첫 200억달러를 돌파하고, 30억달러의 무역흑자도 기대된다는 것이다. 24%가 넘는 수출 증가율이다. 만성적인 무역적자였던 일반기계가 기록적인 수출에 힘입어 무역흑자 기조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어쨌든 고무적인 현상임이 분명하다. 그 원인에 대해선 물론 여러 분석이 있을 수 있다. 일본 독일 등이 정밀기계와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시장 공백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고, 중국효과에 더해 미국 EU 중동 등에서 수요가 폭발한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역흑자에 대해서도 기록적인 수출 덕분이 크지만 국내 설비투자 부진으로 인해 수입수요 증가가 덜했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점을 감안해도 우리나라가 일본 독일 등의 기술장벽 앞에서 지레 기계산업을 포기하고 말았다면 이런 기회는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70년대부터 시작된 정부와 기업의 기계산업에 대한 도전이 이제야 그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기계산업에서의 본 게임은 지금부터다. 여전히 대일 무역역조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는데다 고부가치 영역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중국의 추격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수출 호조가 그런 문제를 극복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핵심 부품과 소재 등에 대한 과감한 도전으로 이어간다면 그것이 곧 산업구조 고도화와 무역구조 선진화로 가는 첩경이다. 문제는 자본재산업에서 원천기술의 벽을 뛰어넘겠다는 바보들, 그런 영웅적인 바보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 사회 분위기로는 그걸 기대하기가 쉽지 않아 걱정이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