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변호사만 고집할 필요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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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모 변호사(34)는 외국계 생명보험회사에서 일한다.
그렇다고 사내변호사나 고문변호사로 근무하는 것은 아니다.
통념과는 달리 보험영업 전선에서 직접 뛰는 보험설계사다.
선배 변호사 밑에서 1년 남짓 일하다 지난 4월 뛰쳐나온 뒤론 변호사 업무는 완전히 접었다.
변호사 일에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해 보험 일을 택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개업 변호사 숫자가 지난 7월 말 현재 7008명에 달하면서 '변호사 자격증=철밥통'으로 통했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갈수록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계 차원에서 본업인 변호사일은 제쳐놓고 '외도'에 나서는 변호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개업한 지 5년차 이내의 새내기 변호사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개업한 김모 변호사(39)는 요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
당초 생각보다 재미 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부동산중개 업무를 하다가 잘될 경우 아예 변호사 간판을 내리고 대신 공인중개사 간판을 내걸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보따리장수를 하는 변호사도 있다.
정모(37),이모(38) 변호사는 휴대폰을 팔러 중국을 수시로 다닌다.
변호사 업무와는 별개로 '부업'에 나서는 투잡형 변호사도 늘고 있다.
송모 변호사(39)는 투자자문업에 뛰어들었고 박모 변호사(40)는 찜질방을 경영하고 있다.
영업비 절감과 고객 만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변호사도 있다.
김모 변호사(35)는 서울 서초동 법원 주변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워낙 본인이 술을 좋아하는 데다 원가로 고객을 접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단골 술집을 아예 인수해 버렸다.
몇년 전만 해도 변호사의 외도는 더 나은 삶이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전직이 많았다.
정보기술(IT) 붐을 타고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등으로 진출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응진 변호사는 김&장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나와 로커스 싸이더스 지패밀리엔터테인먼트 등 벤처기업과 연예 관련 기업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현재 스포츠용품 개발업체인 동화S&T 대표이사로 있다.
그는 변호사보다 CEO로 불러주길 바란다.
씨앤씨엔터프라이즈 대표이사로 활동 중인 전원책 변호사도 이 같은 범주에 속한다.
전 변호사는 이 회사의 사외이사로 있다가 회사가 경영 위기에 처하자 지난달 구원투수로 CEO를 맡았다.
오세오닷컴의 최용석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전문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다만 지나친 상업주의로 인해 변호사 윤리마저 위협받아선 곤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