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예정없던 심야면담서 OK"

"카스트로 의장은 이번 계약이 일개 기업과 전력청 사이의 거래가 아니라 한국과 쿠바 국가간의 계약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가장 인상에 남는 대목입니다." 지난달 28일 미수교국인 쿠바 전력청으로부터 3억3000만달러 어치의 디젤발전 설비공급 계약을 따낸 김헌태 현대중공업 상무(엔진기계부문 영업총괄)의 목소리에선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쿠바 총발전설비 용량의 20%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계약금액으로는 우리나라 대(對)쿠바 연간 수출액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그는 대규모 수주와 함께 쿠바 국가수반인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장시간 접견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김 상무가 현지에서 카스트로 의장을 만난 것은 지난달 19일. "밤 10시였어요.쿠바 수도 아바나에 있는 카스트로 의장 관저에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접견은 길어야 10분이나 20분 정도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밤 10시30분에 시작된 접견은 자정을 넘겨 2시간이나 계속됐습니다." 카스트로 의장은 79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에 열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김 상무는 전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45년 집권기간 중 미국 대통령이 9∼10명이나 바뀐 걸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군복을 벗은 일이 없다는 등 비교적 정치적인 주제를 포함해 긴 얘기를 이끌어나갔어요. 경제 얘기로는 쿠바가 아직껏 20W짜리 전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등 취약한 전력사정을 언급했습니다." 김 상무는 현대중공업에 대한 카스트로 의장의 관심 역시 대단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쿠바전력청 관계자들이 지난 7월 한국의 현대중공업 발전설비 제작라인을 둘러보고 돌아간 후 제출한 출장보고서를 다 읽어본 듯 카스트로 의장은 이런저런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쿠바 발전설비 시장은 그동안 독일 업체의 독무대였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제품 설명회를 가진 뒤 코웃음을 쳤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울산의 발전설비 제작라인을 보고 간 뒤 태도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국내 직원들이 새벽에도 사무실에 남아 쿠바전력청이 요구하는 제품관련 자료를 지체 없이 보내주자 성실성과 신뢰성에 감복했다고들 했습니다." 쿠바전력청은 당초 핀란드 바실라,독일 만(MAN),일본 다이하츠,현대중공업 4사에 골고루 분배해 발주할 계획이었으나 현대중공업의 컨테이너형 디젤 발전설비가 사용연수가 두 배나 길고(20년) 발전단가는 절반이나 싸다는 점에 매료돼 낙점했다고 한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