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현대와 계약파기' 위협] 더 받아내려는 속셈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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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이 20일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출을 문제 삼아 "현대와의 모든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밝힘에 따라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이 중대한 기로에 봉착했다.
북측은 이날 개성관광 협상 불가는 물론 금강산 관광의 전면 중단을 시사하는 발언까지 불사해 양측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진정 국면을 맞는 듯했던 현대와 북측 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돌변함에 따라 그동안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은 정부 책임론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겉으론 '의리' 속내는 '실리'
강경 일변도의 담화를 발표한 북측의 의도는 현재로선 명확하지 않다.
겉으로는 현대측과의 의리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속내는 대북 사업을 다변화해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북측이 김윤규 전 부회장을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고 정몽헌 회장 등과 동격으로 지칭하면서 개성관광 사업에 대해 "부득불 다른 대상과 관광 협의를 추진해 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고 언급한 점이 주목된다.
"현대가 본래의 실체도 없고 신의도 다 깨져 버린 조건에서 그 전과 같은 협력 대상이 되겠는가"라는 논리를 내세워 현대에 줬던 독점권을 무효화한 뒤 남측 기업들의 경쟁을 유도, 실리 챙기기에 나설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일동 한국개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도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북한이 남측 파트너를 다양화해 더 이상 현대에 끌려다니지 않고 각종 개발 사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북한이 '더 이상 현대로부터 빼먹을 게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에도 길은 있다(?)'
북측은 담화문 말미에 "현대에도 앞날은 있고 길은 있다"면서 현대측에 대응할 여지를 남겼다.
"현대 상층부가 곁에 와 붙어 기생하려는 야심가들을 버리고 옳은 길에 들어선다면 금강산 관광의 넓은 길을 열어 주겠다"는 표현도 이를 뒷받침한다.
현대측은 이를 김윤규 퇴출에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여겨지는 현정은 회장의 측근을 퇴출하고 김윤규 전 부회장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현 회장이 '읍참마속의 결단'으로 도려낸 '종기'를 다시 붙이는 것은 고려할 수 없다는 게 현대측 입장이다.
◆'신뢰할 수 없는 북한'
이번 사태는 다른 기업들엔 '대북 사업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강한 인식을 심어줄 것으로 보인다.
김석진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실 부연구위원은 "북한이 여전히 시스템이나 남북 양측이 합의한 조건이 아닌 사람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면서 "김윤규라는 한 사람을 해임시켰다는 문제 때문에 현대가 대북 사업을 그르치게 됐다는 건 다른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도 "중·장기적으로 대북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북한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시켜 줬다"고 강조했다.
류시훈.오상헌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