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에서 사기꾼으로…수감 고통딛고 재기 날갯짓


미국에서 '가사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사 스튜어트(64)는 오뚝이 같은 기업인이다.


그는 3년 전 한 제약회사의 주식을 절묘한 타이밍에 팔았다가 내부자 거래 혐의로 기소돼 올해 3월까지 감옥에 있었다.
스튜어트는 앤더슨 연방 교도소에서 죄수번호 55170-054를 달고 다른 여죄수들로부터 인스턴트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방법을 배웠다.


출소 후에는 지난 8월까지 뉴욕 자택에서 연금 상태에 있었다.


발목에 위치 추적용 전자 발찌를 차고 일주일에 48시간밖에 외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택 연금이 끝난 지 몇 달 안 된 지금 그는 기업인 방송인 출판인으로 다시 맹활약 중이다.


재산이 다소 쪼그라들고 언론과 대중의 대접이 예전보다 냉랭해지긴 했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미국 최초의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미국 잡지 포천은 지난 11월호에서 그를 미국의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21위에 랭크시켰다.


수감되기 직전 자신이 설립하고 지분의 60%를 가지고 있는 회사 마사스튜어트리빙옴니미디어(MSLO)의 회장 겸 CEO 자리를 내놨으나 MSLO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경영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진행하던 취업 리얼리티 TV 쇼 '견습생(The apprentice)'의 바통을 이어받아 진행 중이고 지난 10월에는 '마사의 법칙'을 출간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려놨다.


마사 스튜어트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다.


그의 재산은 올 3월 경영 잡지 포브스 부호 리스트 발표 때를 기준으로 10억달러(1조원)에 이른다.


최근 MSLO의 주가가 많이 떨어져 재산이 6억달러로 줄었지만 여전히 억만장자다.


이 많은 재산을 모두 자기 혼자 힘으로 벌었다.


그는 1941년 폴란드 이민 가문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이긴 했어도 전쟁 중이었던 데다 동생이 줄줄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마사는 어려서부터 집안 잡일 하나에도 세심한 완벽주의를 발휘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에게 요리와 바느질을,아버지에게 정원일을,할머니에게 통조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학교에서도 공부와 특별활동을 모두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했고 올 A를 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바나드 대)은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모자라는 등록금은 모델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었다.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하고 1965년 딸 알렉시를 낳을 때까지 뛰어난 외모 덕에 TV광고 및 잡지 모델로 꽤 잘 나갔다.


이후엔 주식 중개인으로 변신했다.


이 직업에서도 성공을 맛봤지만 1973년 경기 침체로 주가가 고꾸라지자 조기 은퇴하고 남편과 함께 낡은 전원 주택을 사서 코네티컷 웨스트포트로 이주해 정착했다.


그가 집 개축,장식,정원일에 본격적인 열의를 보인 것은 이때부터다.


마사 스튜어트는 전업 주부로 만족하지 않았다.


자기 집 지하실에서 출장 요리 사업을 시작했다.


지역신문과 TV에 몇 편의 광고를 냈고 결혼식 출장 요리에 처음 도전했다.


그녀의 솜씨와 재능은 금세 입소문을 타고 번졌다.


얼마 안 돼 출장 요리 관련 책을 시작으로 요리 인테리어 정원가꾸기를 주제로 수십권의 책과 신문 칼럼을 써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결혼 생활은 파국으로 치달아 남편 앤디와 1990년 이혼했으나 사업으로는 승승장구했다.


'마사 스튜어트 리빙'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출간하고 CBS방송에서 같은 이름의 토크쇼 진행도 맡았다.


1997년에는 출판,토크쇼,웹사이트 등 모든 사업을 한데 모아 MSLO를 설립했다.


◆주부들의 우상에서 사기꾼으로


스튜어트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은 2002년 12월 임클론(ImClone)이라는 제약회사의 주식 3928주를 매도하면서부터다.


미국 식품의약국이 임클론의 암치료제를 허가해주지 않겠다고 발표하기 하루 전의 일로,타이밍이 절묘했다.


이 회사 주가는 다음 날부터 한 달 새 70%나 폭락했으나 스튜어트는 전혀 손해를 입지 않았고 미국 하원 위원회는 스튜어트가 임클론의 창업자와 친구라는 이유로 정보를 미리 빼냈을 것이라며 내부자거래 혐의로 조사에 착수했다.


스튜어트는 1년6개월 동안의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내부자 거래 혐의는 벗었지만 공동모의,재판방해,위증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스튜어트는 재판을 받고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에 대한 여론과 언론의 시선이 180도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솜씨 좋고 우아한 주부들의 우상'에서 '독한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언론은 이 사건을 가십거리로 집요하게 파헤치고 보도했는데 이는 스튜어트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연예인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스타성은 그가 빨리 재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자수성가한 미모의 여성 기업인이 몰락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본 대중은 그의 패자 부활전도 기꺼이 관람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마사 스튜어트는 '집안 잡일'로 치부되던 요리,정원손질,수공예를 사업 아이템으로 진화시키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붙인 기업인이다.


능력과 패기가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포천 잡지는 스튜어트의 부활을 '고통스러울 만큼 철저한 그녀의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유죄 확정 선고를 받고 수감되기 직전까지 몇 달간 철저하게 재기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회장직을 내놓는 것과 동시에 출소 후 경영권 탈환에 도움을 줄 만한 원군을 회사 내 요직에 심고 이렇게 해서 새로 출범시킨 이사회와 연봉 협상을 벌여 연봉 90만달러와 최대 150%의 보너스,기사가 딸린 승용차 등 기존의 계약 내용을 2009년 9월까지 바꾸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마사 스튜어트는 모든 안배가 끝나자 지난해 10월 감옥으로 걸어들어갔다.


스튜어트는 출소 후 "나는 내가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은 내 모든 것"이라며 회장 겸 CEO자리를 곧 되찾겠다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