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식에서 나온 대기업 총수 말 · 말 · 말 …

재계가 병술년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포스코 등 주요 그룹들은 2일 일제히 시무식을 갖고 보다 나은 미래와 가치를 창조해 줄 것을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올해 주요 기업들의 신년사에는 의례적인 수사와 추상적인 경영 슬로건이 나열됐던 예년과 달리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고 새로운 도약의 지평을 찾고자 하는 총수의 강한 의지와 욕구가 담겨 있었다. 또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찬 신년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도 올 재계 총수들의 신년사 특징이다. ◆ 이건희 회장 "세계 경쟁자들 삼성 에워싸" 삼성은 오랫동안 선진 기업들을 뒤쫓아 왔으나 이제는 쫓기는 입장에 서 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데도 세계의 경쟁자들은 힘을 합쳐 우리를 견제하고 있으며 그 움직임은 앞으로 더 거세질 전망이다. 우리는 지난날 짧은 기간에 세계 정상에 오른 반도체 신화를 일구었지만 앞으로 제2,제3의 신화를 창조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성공도 의미 없는 과거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선 자를 뒤따르던 쉬운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두에 서서 험난한 여정을 걸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는 과감히 버리고 기술적으로 더 고도화되고 가치가 높은 분야를 향해 끊임없이 경쟁력을 높여 나갈 때만이 정상은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올해에는 해외 곳곳에 제2의 삼성을 건설하고 세계 1등 제품을 더 많이 늘려서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 정몽구 회장 "해외언론 격찬 부담스럽다" 언론에 우리가 잘나간다고 보도되는데 절대 자만하면 안 된다. 타임지 비즈니스위크 등이 우리를 격찬하고 있지만 나로서는 무척 부담스럽다.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품질로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진 것이 아니다. 지금 세계 자동차업계는 격변기다. 일본은 도요타 혼다 정도만 살아 남고 나머지는 흡수 합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볼보 피아트도 어려운 지경이다. 디트로이트의 빅3도 홍역을 앓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투자 성과를 나타내는 우리의 각종 지표는 아직 선진 업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오히려 위기감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고용과 노사 문제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구성원 개개인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해 지속 성장 가능한 기업을 만들어 나가야 고용안정이 이룩된다. ◆ 구본무 회장 "고객의 기대수준 넘어서라" 고객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영관을 더욱 확고히해야 한다. 다양한 노력들을 통해 고객 만족도가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고객들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 이제 품질에 있어서만큼은 한 치의 양보나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되겠다. 또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어떤 환경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강한 사업 구조와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핵심기술 축적과 브랜드 위상 제고를 통해 사업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원과 시간의 부족을 탓하지 말자.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열심히 해놓고도 마무리가 부족하면 고객은 실망한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뤄내야 한다. 작은 습관이 모여 실력이 되고 결국에는 우리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것이다. ◆ 최태원 회장 "저력 확인했으니 이제 전진" 최근 몇 년간 수많은 난관들을 헤쳐 오면서 우리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행복을 나누는 SK로 거듭나기 위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더욱 분발해 나가자.우선 SK의 비전인 '아·태지역 에너지·화학 메이저로의 도약'을 위해 중국 내 제2의 SK를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지리·문화적으로 가까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 추진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최우선 전략적 과제인 동시에 수출 기업으로 자리 매김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또 지난해 발표한 '따로 또 같이' 경영 실천력 제고를 위해 철학과 문화 및 경영 기법과 경험,정보와 같은 소프트웨어의 계열사 간 공유에 주력하겠다. 지난해 그룹 매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60조원을 돌파하고 SK㈜ SK텔레콤 SK건설 등 주력 계열사들이 모두 비약적인 발전을 기록한 것도 '따로 또 같이'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제 우리는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불황의 골짜기로 들어가고 있다. 이는 세계 철강업의 경쟁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찾아온 구조적인 변화로 과거와 달리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면 이제는 '그 유'에서 '더 나은 유'를 만들어 나갈 때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델타와 같은 거대 항공사도 노사 갈등 끝에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리에게 같은 문제는 없는지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한다. 또 우리 사회는 기업의 책임과 사회성 실현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어 앞으로 고객과 사회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기업은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사회의 그늘진 곳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야 한다. ◆허창수 GS 회장=지난날에는 경쟁에서 한번 뒤지더라도 회복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경쟁자에 앞서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효과적인 실행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GS 임직원 각자가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김승연 한화 회장=내수에 편중된 그룹 사업 영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사업 아이템의 발굴이야말로 우리의 절실한 과제다. 경쟁자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고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의 초석이 될 수 있는 신수종 사업을 찾아나서야 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올해 창립 60주년을 맞게 되는데 앞으로의 미래는 여러분들의 몫이다. 내년엔 315명이 앉을 수 있는 이 곳(그룹 대강당)을 신입 사원들로 꽉 채우고 싶다. 올해는 장차 재계 5대 그룹으로 성장하고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첫해다. ◆김준기 동부 회장=세계는 글로벌·디지털·소프트 시대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도전이나 어려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자만과 독선,좌절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