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북 크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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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가 빠른 세상이어선지 책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예전 독서주간에 흔히 보았던 '책 속에 길이 있다'는 표어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출판되는 책들도 종전과는 전혀 다르다.
점점 얇아지고 화려해지고 그림들로 빼곡히 차 있다.
내용들도 가볍다.
어떻게 하면 조직내에서 출세하고,재테크로 돈을 벌고,다이어트로 건강을 유지할 것이냐 하는 등의 실용서가 주종을 이룬다.
대문호들이 쓴 명작이나 사색을 유도하는 철학서 등은 뒤로 처지는 양상이다.
이런 책들이야말로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큰 지혜와 혜안을 주고 있는데도 서자취급을 받는 꼴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책의 힘은 대단하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관을 바꾸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이 것이 곧 양서를 돌려 보고 나눠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북 크로싱(book-crossing)'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서가에 꽂혀 있는 양서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돌려 보자는 일종의 문화운동이다.
'책 해방운동'으로도 불리는 북 크로싱은 지난 2001년 미국의 론 혼베이커가 시작한 이후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다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방법은 이렇다.
책 표지나 책장 사이에 운동의 취지를 밝히는 글을 남긴 뒤 누군가에게 내 책을 전한다.
장소는 공원,지하철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책을 읽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책을 전한다.
책은 계속 주인을 바꿔가며 새 생명을 사는 것이다.
독서광이었던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는 일화들이 많다.
그런데 그는 한번 읽은 책은 보관하지 않고 내다 버렸다고 한다.
북 크로싱의 효시라 할 만하다.
사실 책은 묘한 매력이 있어서 책을 선뜻 풀어주기가 쉽지 않다.
"책을 소홀히 하는 것은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과 같다"는 사고도 책을 해방시키는 족쇄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인터넷상의 몇몇 독서 사이트에서 시작된 북 크로싱이 양서를 읽는 독서운동의 촉매가 됐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