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고향에 안 가는 사람들 ‥ 음식점 주인·맞벌이 주부 등

"설날에 쉬냐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가게 문 열어야죠. 그 때 손님이 얼마나 많은데요."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모씨(37)는 설날 연휴인 오는 28∼30일까지 3일간 영업을 하기로 했다. 한씨는 지난해 추석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향인 안동에 내려가지 못하고 가게 문을 열었는데 손님들이 엄청 몰리자 올해부터는 명절 때마다 문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명절이면 고향을 찾는 풍경이 바뀌고 있다. 특히 올 설 연휴는 3일로 짧아 고향 대신 일터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미혼 남녀들은 고향행을 미루고 연휴 기간을 맞선 일정으로 꽉 채웠다. 구직자들은 연휴를 일자리 찾는 기회로 삼고 채용 사이트를 뒤지고 있다. ◆설날은 음식점 대목일 한씨는 명절을 대목으로 여긴다. 한씨 가게는 작년 추석에 하루 매출 신기록을 올렸다. 그는 "주문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손님이 밀려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씨는 이번 설날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올 설처럼 연휴가 짧으면 식당 주변 대학의 학생들이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데다 아침에 차례를 지낸 사람들이 저녁에는 외식하러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절 때 문을 닫는 고깃집들이 많아 손님들을 독점할 수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순대 타운도 설날에 문을 연다. 평소에도 휴일에 늘 손님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명절 특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명절 하루 장사로 평일 3∼4일치 매출은 거뜬히 올려 쉴 수가 없다. 이곳에서 순대집을 하는 김모씨(60)는 "명절 때도 주말처럼 새벽까지 문을 여는 가게가 많다"고 말했다. ◆시댁보다 직장 선택 설 근무를 자청하는 맞벌이 주부들이 늘어난 것도 신풍속도다. 시댁에서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일을 핑계로 시댁에 가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할인점 계산대에서 일하는 주부 이미옥씨(36)는 2년 전부터 명절 때마다 근무를 한다. "가게가 명절엔 더 바빠서…"라며 시댁에 못 간다고 해도 시어머니가 웬만큼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이씨는 "시댁에서 받을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명절 근무를 하겠다는 주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의 남편 김태형씨(40)는 "1년에 한두 번 있는 명절인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시댁을 피하려는 건 너무하지 않으냐"며 씁쓸해 했다. ◆맞선과 구직으로 바쁜 때 미혼 남녀들은 명절 때 고향 가는 길이 반갑지만은 않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라는 가족 친지들의 성화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 연휴를 맞선 기간으로 정하고 고향행을 포기한 미혼 남녀들이 많아졌다. 결혼정보 회사들은 명절을 앞두고 바빠진다. 명절 연휴를 이용해 선을 보려는 미혼 남녀들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설 2∼3주 전부터 회원 가입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가입하는 미혼 남녀가 급증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이달 들어 가입 문의 건수가 작년 12월에 비해 30% 가까이 늘었으며 가입자 수도 10% 이상 증가했다. 장손인 은행원 김형준씨(31)는 최근 결혼정보 회사에 가입하고 설 연휴 내내 소개팅을 받기로 했다. 구직자들에게 명절은 괴로운 손님이다. 명절을 즐길 여유가 없어서다. 고향에 가봤자 찬밥 신세가 뻔하기 때문에 지금 있는 곳에 머물며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채용정보 사이트 스카우트(www.scout.co.kr)에는 최근 접속자 수와 이력서 등록 건수 등이 10~20%씩 늘었다. 채용 시즌인 작년 11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www.jobkorea.co.kr)의 평균 페이지뷰는 설날을 앞두고 매주 3~4%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유승호.김현예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