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중재자'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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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미국 백악관을 감탄케 한 바로 며칠 뒤인 지난주,이번에는 러시아 크렘린궁의 기세를 꺾어놓았다.
메르켈이 미국과 러시아를 연이어 방문한 것은 의도적으로 잡은 일정이 아니다.
아무튼 메르켈은 이번 방문을 통해 새 독일 총리의 외교정책을 어느 정도 시사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메르켈 총리는 적대적이진 않았지만 최근 3년간 워싱턴과의 긴장관계를 해소할 수 있기를 원했다.
또 독일과 러시아 리더들을 한데 묶어 놓았던 복잡한 문제들을 풀기를 바랐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는 물론 대 러시아 관계에서도 다시 균형을 되찾고자 노력했다.
메르켈은 놀라운 과단성과 정치력을 통해 독일의 좌·우 양대 정당의 대연정을 이룩했으며 앞서서 이끌고 있다.
이런 메르켈이 공식적으로 밝힌 변화에 대해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도 중요한 화두이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13일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서 독일과 미국 간의 친선관계에 대해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친분'도 과시했다.
지난 16일 모스크바에선 개인적으로 또는 수사적으로 친분을 내보이진 않았다.
대신 독일이 러시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말을 꺼내는 정도였다.
메르켈은 이를 통해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정책 우선순위를 정반대로 돌려놓았다.
물론 메르켈 총리는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겠다는 독일의 방침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방위비 증액에도 상당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 중앙정보부가 유럽에서 납치와 비밀 감금장소 문제,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관리문제 등에 대해 부시와 토론하길 강요받았다.
하지만 그는 양국 간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미국의 대외 이미지를 고려해 말을 조심스럽게 했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예방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하자,메르켈은 이를 경청했다.
메르켈은 자신이 살아온 얘기로 중요한 사항을 설명하곤 한다.
메르켈은 옛 동독 공산당 치하에서 성장한 물리학자 출신으로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정계에 입문했다.
그의 이런 화법은 동독에서 KGB 관리를 지낸 푸틴보다는 부시와 더 많은 연대감을 보여주는 것 같다.
메르켈은 미국 유명인사들과 가진 만찬석상에 상당한 관심을 끌 만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가끔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중재자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러시아를 대립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재자 역할이 어떤 것이 될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메르켈의 현실인식은 세계 정세를 안정화시키는 리더십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리=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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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짐 호그랜드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메르켈의 독일,국제 정치계의 새 주자가 될 것인가?(Merkel's Germany,A New Player In Global Politics?)'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