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메뚜기 직장인

"마셜 맥루한 같은 사람은 사명(mission)을 수행한다. 그는 비전을 찾는데 25년을 소비했다. 마침내 자신의 시대가 왔을 때 세상에 영향을 주었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란 말로 유명한 맥루한도 젊은 시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주위에 없는 외로운 '예언자'였다. 그런 그가 신념을 놓지 않고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천착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드러커는 그 힘을 사명감에서 찾고 있다. 사명감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물론 들어본 지도 한참 된 것 같다. 그러나 이 단어가 요즘 같아선 정말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취업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신입사원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직장에 들어간 지 1년이 채 못돼 회사를 옮기고 있는 게 현실(인크루트 설문조사)이다. 20대 사원들이 워낙 자주 이리저리 옮기는 통에 이런 이들을 꼬집어 '메뚜기 직장인'이라고 부르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이다. 회사로서는 여간 손해가 아니다. 채용 비용을 날림은 물론 교육투자도 헛돈이 된다. 사람들이 마음을 잡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는 뭘까. 이들을 붙잡아서 '딴 마음 먹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도대체 무엇일까. 돈일까,자리일까,아니면 일하는 재미일까. 사실 이런 고민을 가장 깊게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일선 CEO(최고경영자)들이다. 많은 이들은 CEO들이 하는 고민이 주로 새 시장을 찾는 것이거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많은 고민은 사실 '사람'에 관한 것이다. 요약하면 '어떻게 하면 사원들을 이 회사에서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다. 평가를 엄정하게 하고 잘하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면서 동기부여 장치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나마 때에 따라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민간 기업의 CEO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공공부문에 가면 인센티브 자체가 쉽지 않다. 인사에 반영하면 되겠지 하겠지만 여전히 연공서열이 존재한다. 동기 부여 없이 사람들을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근로의욕을 높이는 시도 가운데 성공적인 것이 미국의 '훌륭한 일터(GWP:Great Workplace)'운동이다. 지난 90년대 경제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이 떠나고 싶지 않은 직장을 만든 미국 일터의 특징을 찾아 그런 조직을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다. 신뢰,자부심,재미가 훌륭한 일터를 만드는 공통된 특징이었다. 일본의 경우도 지난 17세기 양명학자들인 석문학파가 중심이 돼 '제업즉수행(諸業則修行)' 즉 모든 일이 도닦는 일이라는 명제를 만들었다. 이 화두가 아무리 하찮은 일에서라도 나름의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장치 역할을 했다. 돈이 안돼도 보상이 없어도 자기 일에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날때 나라 경제와 일터가 활기에 넘치는 것이다. 투자가 늘어 경기가 활성화 될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이렇게 근로의욕이 바닥인데 경기가 정말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이다. 고참들도 사명감은 커녕 속으로는 메뚜기가 부럽기만 한 게 현실인 상황에서 말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