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구비관리' 사전검증 바람직

유희열 먼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긴 부자의 비유가 성서 마태복음에 등장한다. 각자에게 능력대로 돈을 맡긴 뒤 그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과 함께 셈을 해 이윤을 많이 남긴 종에게는 상을 주고,그렇지 못한 종에게는 징벌을 줬다는 이야기다. 종교인들의 신학적 해석은 뒤로 하고 일단 이 달란트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사후정산'이라는 점에서,그리고 성과에 따라 '성과급'과 '징계'를 가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많은 국가과학기술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적용되는 연구비관리 시스템과 유사한 면이 있다. 국가과학기술 R&D에 사용된 연구비는 연구가 종료된 후 얼마나 적절하게 사용됐는지에 대해 정부의 검증, 곧 '사후감사'를 받게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된 연구비가 용도에 맞게 사용됐는지 검증하는 것은 꼭 필요하고 당연한 절차다. 또한 그 결과에 따라 차후의 예산지원,연구계속 등을 결정하는 것이니 어느 정도의 효율성 달성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현재 연구비관리 시스템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예산만 8조9000억원에 달하는 모든 국가 R&D 과제를 사후정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사후검증의 경우에도 막대한 인력·예산이 투입돼야 가능한데,이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수 있다. 둘째,외부 기관의 연구비 집행에 대한 사후검증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연구기관의 행정적ㆍ금전적ㆍ정신적 업무 부담감이 가중돼 연구자의 연구 집중도와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셋째,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른바 '사후약방문'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자원이 무한하지도 않고 성서에 나오는 부잣집 주인도 못된다. 귀한 세금이 헛되이 사라져 버린 후에 바로잡으려 해도 이미 늦거나 그 시간과 기회비용의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고 연구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올해 '연구비관리 인증제도'란 것을 시범적으로 도입한다. 연구비관리 시스템을 '과제별 사후 검증' 차원에서 '기관별 사전 예방' 차원으로 전환하는 것으로,예를 들어 산ㆍ학ㆍ연 연구기관의 내부 연구비관리 시스템을 평가해 일정기준을 충족한 기관에 대해서는 연구비 집행에 대한 검증을 연구기관에 일임하는 제도다. 이는 수많은 과제를 일일이 검증하지 않아도 되며,연구자의 연구 집중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현재의 연구비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라 볼 수 있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을 연구비관리 전담기관으로 지정해 지난해 인증을 신청한 27개 기관을 대상으로 6개월간 철저한 사전평가를 실시,평가기준에 부합한 4개 기관을 연구비관리 인증제도 시범대상으로 처음 선정했다. 인증된 기관은 앞으로 1년간 연구비사용실적 보고를 면제하는 인센티브를 받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투명한 연구비 집행을 했다는 명예를 알릴 수 있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본 제도가 처음 실시되는 점을 감안해 1년간 시범운영한 뒤 그 결과에 따라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일정 규모 이상의 연구기관에 전면 도입할 계획이다. 최근 일부 연구자들의 연구비 유용 문제와 연구결과 조작이 국민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외국의 사례를 들어 '정직성 위원회'를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고 실제로 도입되고 있기도 하다. 달란트의 교훈을 기회삼아 지금까지 연구의 효율성과 정직성을 모두 연구자 개인에게만 짐지웠던 환경에서,투명성을 제고하고 연구자의 연구몰입을 지원하는 더 효율적인 시스템인 연구비관리 인증제도를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 정책 당국과 연구기관들이 협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