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철도공사 사장에 듣는다] "파업 가담자 눈감아 주는일 없을 것"



철도공사 노동조합의 불법 파업(3월1∼4일)은 이철 사장(58)의 강경 대응으로 장기화할 것이라는 일부 우려와는 달리 나흘 만에 끝났다.
파업 조기 종식에는 이 사장이 파업 참가자 2244명에게 무더기 직위해제를 내리는 등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노조를 '압박'한 영향이 컸다.


이 사장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까지 선고받았던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그동안 '친노동' 성향의 인물로 비쳐진 이 사장은 파업 당시의 결정으로 인해 요즘 노조로부터 '노동운동 탄압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다.


한술 더떠 노조측은 공사측이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다면 재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KTX 여승무원들의 농성도 계속되고 있다.
파업의 여진이 남아 있는 가운데 공사를 이끌고 있는 이 사장을 만나 그간의 경위와 향후 각오를 들어보았다.



- 파업 참가자를 당초 공언한 대로 전원 징계할 계획인가.
"사규와 법규는 엄정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불법 파업이 발생하더라도 수십명의 노조 집행부만 엄벌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일반 노조원들은 부담없이 파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파업에 불참할 경우 내부에서 '왕따'를 당했던 만큼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도덕적 해이를 추방하지 않는 한 파업은 반복될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법 행위에 가담한 모든 사람에게 경중을 따져 법과 사규에 따라 책임을 묻겠다.


수단과 방법 측면에선 타협할 수 있지만 원칙을 놓고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는 게 인생 신조인 만큼 과거처럼 슬그머니 눈감아주는 일은 절대 없다."


-징계조치는 언제쯤 내려지는가.


"3∼4개월 이상 걸릴 것이다.


가능한 빨리 징계하는 게 원칙이지만 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징계 대상자가 사상 최대 규모(직위해제 2244명)인 만큼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주의하겠다."


-파업 당시 자동 승진과 같은 단체협약의 독소조항을 없애겠다고 했다.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해 현실적으로는 추진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파기를 선언해본들 법적 효력이 없다.


국민 의견 등을 물어 사회운동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생각이다."


-본사 직원의 현장 배치도 공언해 왔는데 저항이 많지 않겠나.


"업무별로 사람이 남아도는 곳이 있고 인력이 부족한 곳도 있다.


잉여인력은 교육 후 재배치할 것이다.


직원들은 새 업무에 대해 자심감이 없고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절대로 이들을 해고하지는 않겠다.


회사를 믿어줬으면 좋겠다."


-이번 파업의 원인이 된 쟁점은.


"마지막까지 합의하지 못한 사안은 해고자 67명 전원 복직과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화였다.


외부적으로는 때맞춰 비정규직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것이 노조를 자극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월 정부가 나서서 철도 적자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밝혔다.


이후 공사의 막대한 부채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파업과 관련,경영진이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파업을 방관했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이 있었는데.


"한마디로 억지다.


파업을 하면 노사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점을 노조에 수도 없이 이야기했다.


파업을 방관했다면 어떻게 노조에 초강경 대응을 할 수 있었겠나."


-철도 부채의 원인이 잘못 알려져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뭔가.


"철도 부채의 원인은 대부분 고속철도에 있다.


경부고속철도 건설비용은 당초 5조8000억원에서 22조원으로 4배가량 늘어났다.


이용객도 당초 하루 20만명으로 추정했는데 실제로는 8만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비용은 터무니없이 적게,수익은 지나치게 많이 추정한 것이다.


여기서 생긴 부채 4조5000억원을 철도공사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러나 그동안은 아무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했다.


누가 감히 정부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겠나."


-다른 공기업도 부채가 많지 않나.


"다른 공기업은 영업이익으로 부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할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돈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다.


금융비용 부담 능력이 20%밖에 안 된다.


이러다 보니 한 해에 1조원씩 적자가 발생한다.


나도 이전 사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눈 질끈 감고 3년 임기를 무난히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결국 국민 부담만 더 커지지 않겠나.


양심상 결코 이를 덮어두고 갈 수는 없다."


-부채 탕감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요구한다면 자구 노력도 더 강화해야 하지 않나.


"사내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팀장급 직원 20%를 외부에서 공채했다.


이렇게 한 공기업은 철도공사가 유일하다.


자리도 대폭 줄였다.


직원 충원도 안했다.


그동안 직원들에게 욕먹을 일만 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자회사 구조조정 등 혁신을 계속할 것이다. 직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 대신 꿈을 심어 주고 싶다. 이를 위해 철도 부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


-외국도 정부가 나서서 부채를 해결했나.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외국에서는 예외없이 철도 건설 비용을 국가 재정에서 부담했다.


철도산업은 특성상 운영주체가 건설비용을 부담하면서 이익을 낼 수는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건설은 국가가,운영은 공사가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외국 사례를 따를까.


"국무총리실 산하에 철도 부채 문제를 다루는 태스크 포스팀이 구성됐다.


5월 말 초안이 나오고 6월 말 최종안이 확정돼 대통령에 보고할 예정이다.


올해 안에 예산과 관련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다.


어떤 안이 나올지 모르지만 공사 입장은 고속철도 건설 과정에서 생긴 부채를 정부가 전부 인수하라는 것이다."


-독일 월드컵 때 기차 타고 북한을 거쳐 응원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달 말이면 결론이 난다.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독일까지 가는 방안,블라디보스토크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는 방안 등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북한을 거치는 방안은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


-명절 입석표를 계속 발매할 것인가.


"그렇다.


다만 승강장 주변 칸에 입석 승객이 몰리는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표에 탑승 칸을 지정하거나 입석이 가능한 칸을 별도로 운영하는 식으로 보완할 것이다."정리=조성근·사진=김병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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