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수학과 과학의 융합

김경식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구면 기하학'으로 통하는 '리만 기하학'을 이해하지 못해 상대성이론 정립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결국 지인인 수학자 민코프스키로부터 리만 기하학을 배우고 나서야 일반 상대성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수학자 리만이 연구해낸 리만 기하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 '아인슈타인 공간'으로 불릴 정도로 이들 이론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마디로 수학이론이 응용되지 않았다면 상대성이론도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다는 얘기다. 수학과 과학을 융합한 수리과학(Mathematical Science)의 응용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2,3,5,7 등 1과 자신의 수로만 나눠지는 '소수'의 다양한 특성이 암호론과 정보통신 분야에 응용돼 왔는가 하면,편미분 방정식론과 위상수학,미분 기하학 등은 컴퓨터 그래픽과 의학분야의 기초 학문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근래 들어 IT(정보기술) BT(바이오 기술) NT(나노기술) 등 첨단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수리과학의 영역도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리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을 예측 분석하는 금융수학을 비롯 보험수학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유전자연구의 핵심인 생명정보학에서는 수학과 생명과학을 융합한 생명수학이 핵심을 맡고 있으며,나노공학에서도 양자역학을 이용한 수리물리학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첨단 분야치고 수리과학과 관련돼 있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차원에서 연구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실제로 일본은 1964년에 수리과학연구소를 출범시켰는가 하면,미국도 현재 11개의 수리과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매년 1100명의 수학박사가 배출되고 있으며 금융가인 월스트리트에만 1000여명의 수학박사가 증권분석가와 펀드매니저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나라에 비해 우리의 수준은 어떤가. 그동안 정부 출연연구기관인 고등과학원과 일부 대학 등에서 관련 연구소를 설립,운영해 왔지만 순수 기초수학연구에만 치중해 왔다. 이로 인해 과학과 경제학 등을 융합하는 학제간 수리과학연구가 지지부진했음은 물론 정보통신과 금융,정보보안 등 응용 연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더욱이 대학에 개설된 수리과학과도 이름만 번듯했지 실제로는 예전의 수학과와 다른 게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문을 연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전문인력 부족에다 예산 제한 등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또 선진국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상아탑에서 학문연구에 급급해 온 우리의 수준을 탈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수학과 과학을 융합시키는 기술과 노하우 없이는 누구도 글로벌 체제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수리과학 시대에 보다 더 철저하게 대비책을 마련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에 출범한 연구소가 명실상부한 수리과학센터로 하루빨리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