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출자제한과 상생협력

최근 여당 지도부는 경제단체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출자총액제한제 폐지가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를 들고 나왔다. 이 제도를 당장 폐지하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영역에 발을 뻗칠 우려가 많다며 대기업이 얼마나 중소기업과 상생경영을 잘하는지 살펴본 다음 폐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얘기다. 그 전에는 기업 지배구조, 경영 투명성 문제 등을 내세우더니 이제는 상생경영을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이번 간담회 역시 인식의 격차를 실감케 해주었다. 이 세상에 상생경영을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만 솔직히 말이 좋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이지 이것은 명분만 가지고 될 일이 절대 아니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에도 그럴 만한 인센티브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 무조건 중소기업을 도와주라는 게 아니라 시장원리가 뒷받침될 때 그만큼 실효성도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자본참여는 그런 차원에서 분명히 유효한 정책수단의 하나다. 중소기업들은 출자총액제한제가 폐지되면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까지 대기업들이 잠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여당은 주장하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만도 어렵다. 오히려 대기업에 대한 출자제한이 중소기업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없지 않다. 넘쳐나는 대기업 자금이 투자가 절실한 부품·소재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길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 여당이 작년에 부품·소재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 출자와 관련해 예외인정 범위를 30% 미만에서 벤처기업에 대한 출자와 동일하게 50% 미만까지 확대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점을 뒤늦게나마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 대기업 자금이 부품·소재기업이나 벤처기업으로 충분히 스며들고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대기업 입장에선 규제가 아예 없는 경우와 비교해 여전히 인센티브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핵심 부품·소재의 경쟁력 확보는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큰 과제다. 만약 대기업도 원하고 부품·소재 중소기업도 원한다면 출자제한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부품·소재기업의 가장 큰 애로중 하나가 기술개발 후 판매문제이고 보면 대기업의 적극적인 자본참여는 공동 기술개발은 물론이고 구매까지 일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벤처기업 발전이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코스닥 상장만이 벤처기업의 출구는 아니다. 그보다 더 큰 출구는 인수.합병(M&A)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대기업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준다면 벤처기업과 대기업 모두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벤처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털의 경영참여 투자도 허용했다. 또 다른 투자의 축인 대기업에 대해서만 언제까지 고정관념과 사시적 시각으로 일관할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여당은 대·중소기업간 양극화가 심각하고 따라서 대기업이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상생협력을 보여주기 전까진 출자총액제한제 폐지가 어렵다는 논리를 들이대지만 현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출자제한으로 인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의 길이 막히고 양극화가 되레 심화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는 얘기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