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이젠 '상생운동' 으로 가자

박효종 민주주의가 꽤 정착돼 있다고 생각되는 이 시점에서도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한국적 현상 가운데 하나가 있다면,바로 폭력시위의 난무다. 노동자건 농민이건 자신들의 뜻을 알리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설 수는 있겠으나,폭력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폭력시위가 난무할수록 공권력의 권위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게 된다. 화염병 쇠파이프 돌멩이 죽창을 휘두르는 시위대 때문에 의무복무중인 전·의경들이 숱하게 부상을 당해도 폭력시위의 주동자가 체포돼 처벌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체포됐다고 해도 바로 풀려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솜방망이 처벌이야말로 폭력시위 문화가 악순환을,그리고 또 확대재생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폭력시위를 해도 처벌이 거의 없으니 더욱 더 폭력적이 되고 그 결과 공권력은 더욱 더 고개를 숙이게 되며 이에 비례해 폭력시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이런 식의 악순환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폭력시위가 벌어져도 공권력이 추상같이 살아있으면 폭력시위의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법치주의의 '선순환'이 자리잡을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좀처럼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던 차에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놀라운 내용을 털어놓았다. 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 들어간 운동권 출신 참모들이 시위대 편을 들기 때문에 폭력시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이 어렵다고 실토한 것이다. 대통령 곁에서 국정을 보좌하는 운동권 출신의 참모들이 왜 앞장서서 법질서에 위배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인가.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편"이라는 속언처럼, 자신들이 시위를 하던 때의 옛정이 살아나서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그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비전과 신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386세대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해 민주화 투쟁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믿었고 또 자신들의 투쟁경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물론 민주화 투쟁이 한국의 정치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는 점에 대해 이의를 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민주화 투쟁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며 잘못된 믿음이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386세대들은 이 문제와 관련,"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화두를 방불케 할 정도로 "민주주의는 운동과 시위를 통해 자란다"는 준칙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를 통해서 자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제도와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법치주의가 자리잡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결코 순조롭게 발전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운동이라고 하더라도 주로 '저항적 정치·사회운동'의 정당성만 강조되고 있는 것이 운동권세대의 분위기다. 도시빈민운동에서부터 노동운동 시민민중운동 환경운동 노점상운동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각종 운동이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항적 성격의 정치·사회운동이 아닌 일상적 차원의 노고들이 평가절하되는 것은 곤란하다. 가족 친족 촌락 교회 시장 기업 등과 같은 사회의 영역과 주체들이 각기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저항적 정치·사회운동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결국 민주주의는 정치·사회적 성격의 저항적 운동에 의해서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질서가 자리잡고,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존중받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융성할 수 있다. 평화적인 시위문화정착을 위해 공권력을 바로 세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