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플라자] R&D 세계화도 '선택과 집중'

복득규 <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 >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도처에 연구소를 설립하는 R&D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주로 본국의 중앙연구소에서 이뤄지던 R&D 활동이 세계 각지로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의하면,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에서 지출한 R&D투자액이 1993년 290억달러에서 2002년에는 670억달러로 2.3배나 증가했다.

R&D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세계 각국의 유치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특히 참여정부 출범 이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동북아 R&D 허브 정책'은 세계 일류의 해외 연구기관을 한국에 유치함으로써 창조형 국가혁신체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5년 8월 말 현재 한국은 898개의 R&D센터를 유치하는 실적을 올렸다.

중국의 외국인 연구소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지만 중국(750개)보다 많은 숫자다.그러나 R&D센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약 22조원에 달하는 한국의 총 R&D 투자액 가운데 외국 부담 비중은 0.5%(2004년)에 불과하다.

2000년 이후에는 유치건수가 계속 줄어드는 반면 폐쇄 연구소가 늘어나고 있어,글로벌 R&D센터의 유치와 활용전략에 대한 재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연구소 76개를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한 R&D센터들은 기술과 인재보다 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시장이라 하면 보통 일반 소비재 시장을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은 주로 대기업의 부품ㆍ소재 시장이다.

특정 부품ㆍ소재를 지원하는 연구소다 보니 규모가 매우 작다.

연구원 수가 20명 이하인 경우가 60%가 넘는다.

진출분야도 대기업의 수요가 있는 전기전자와 기계,자동차 및 화학의 세 분야에 편중돼 있다.

바이오와 제약 같이 한국이 유치를 희망하는 분야에는 진출이 거의 없다.

이들 R&D센터와 한국의 기업·대학·연구소들 간 기술 협력 및 교류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도 문제다.

그에 따라 글로벌 R&D센터들은 최신 기술과 지식을 이전하거나 한국의 혁신역량 강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향후 대책은 무엇일까? 먼저 기존의 산탄총방식의 양적 유치전략을 조준사격방식의 질적 유치 및 활용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이 집중적 유치 대상으로 삼아야 할 R&D센터는 한국의 부족한 혁신역량을 보완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글로벌 핵심연구소(Center of Excellence)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핵심연구소들이 한국에 온다는 보장은 없다.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시장규모에서 중국을 따라 갈 수가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인은 한국 기업의 수요와 우수한 인적자원 및 까다로운 소비자의 테스트베드 기능 등이다.

별다른 유인이 없다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목표분야를 정하고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울러 국내 R&D센터의 세계화 전략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미 중국과 인도 등의 개도국 R&D 센터들도 기술과 인재를 찾아 선진국뿐만 아니라 다른 개도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전 세계 기업이 글로벌 인재와 기술 확보를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진출하지 않았다면 진출을 고려하고,이미 진출해 있다면 소기의 목적을 제대로 거두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GDP의 3%,매출액의 5% 이상 등의 목표를 정해놓고 R&D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기술과 인재를 효율적으로 묶고 관리하는 통합능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술이 융합되고 복잡해지는 가운데 속도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다양한 지역의 인재와 기술을 효율적으로 통합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능력이 R&D 경쟁력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