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걱정스런 검찰 수사

"병을 들어서 마시면 되잖아,바보야."

아들 녀석 방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이솝우화를 읽다가 두루미와 여우가 서로 자기 집에 초대해 놓고선 상대방이 먹지 못하게 한 장면에 이르자 분통이 터져 두 동물에게 호통을 쳤다는 것.

"여우는 호리병을 들고 마시면 되고,두루미는 접시를 기울이면 될텐데 둘 다 머리가 나쁜가봐.아빠!"

그러잖아도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더니 제 딴에는 뭔가 자랑하고 싶은 부분을 발견했다는 듯 기세가 등등했다.고개를 갸웃하다가 아들 녀석과 삼성 현대차 등 국내 유수의 그룹들을 혼내고(?) 있는 검찰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현재 대검 중수부의 분위기는 세상의 모든 비리와 의혹을 다 파헤칠 태세다.

더이상 권력의 눈치를 보던 검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양 서슬퍼런 칼날을 휘둘러대고 있다.중수부 '대변인'인 채동욱 수사기획관조차 "수사가 예상밖으로 초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실제 김재록씨 로비의혹에서 비롯된 검찰 수사는 현대차 비자금으로,또다시 공적자금 수사로 끝간데없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평소 검찰에서 들을 수 없던 이상한 발언이 계속되는 등 미심쩍은 부분도 적지않다.채 기획관은 김재록씨 등 로비스트들을 조사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칭찬을 빼놓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확장을 도운 혐의로 구속된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 김동훈씨에 대해선 '정말 엘리트다'는 말로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김씨에 대한 종래 혐의에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내비쳤다.

검찰의 판단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또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위아 때문에 공적자금이 낭비됐다는 검찰 발표에 대해 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는 "당시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고 자금회수율도 높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올바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대목이다.행여 두루미와 여우를 꾸짖는 아들 녀석처럼 검찰이 자신들만의 잣대로 매사를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병일 사회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