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통신위는 엿장수?

"통신위원회가 마음먹기에 따라 과징금을 5배 더 때릴 수도 있게 돼 있어요. 마음에 들면 마지막 단계에서 절반으로 싹둑 잘라줄 수도 있고요. 세상에 이런 고무줄 규정이 어디 있습니까? 말도 안되는 재량권 남용이에요."

지난 18일 통신위원회가 '단말기 불법 보조금 과징금 강화안'을 발표하자 이동통신업계는 일제히 '고무줄식 규제'라며 통신위를 맹비난했다."불법 보조금을 막기 위해 강수를 쓰는 것은 이해하지만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과징금을 수백억원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제왕으로 군림하겠다는 얘기냐"는 말도 나왔다.

업계 주장대로 이번 과징금 강화안에는 통신위가 '적용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임의조정권과 부과조정권이 매우 넓게 규정돼 있다.

업체의 조사 협조 여부,위반행위 자진 시정 여부,위반행위 주도 여부 등에 따라 통신위가 최대 185%를 더 물리거나 120%를 깎아줄 수 있게 돼 있다.이 가운데 조사 협조 여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통신위 조사관의 판단에 달린 것으로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부과조정권에 대해서는 '난센스'란 말까지 나온다.

부과조정권은 과징금을 결정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최대 50%까지 감액해 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다.곧이곧대로 계산한 과징금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되면 줄여줄 수 있는 시혜적 개념이다.

이런저런 재량권을 다 적용해보면 기준 과징금이 200억원일 경우 SK텔레콤은 최대 1140억원을,KTF와 LG텔레콤은 840억원까지 각각 부과받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통신위는 발표 직후 임의조정권 등을 '융통성'이라고 표현했다.또 "그렇게 정해놓긴 했지만 과다하게 부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다르다.

"재량권이 있으니 로비를 하라는 얘기냐"라고 반문한다.

"통신위 관계자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수백억원이 왔다갔다 하는데 누가 로비를 안하겠느냐"는 것이다.

불법 보조금이 시장안정화를 해치게 내버려둬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규제당국이 '엿장수'가 돼서는 곤란하다.행정규제에 재량권이 크면 반드시 사고가 터지는 법이다.

고기완 IT부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