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과장과 왜곡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은 졸속"이라며 청와대에 독설을 퍼부었던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최근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멕시코를 다녀와 또다시 한·미 FTA 반대론을 쏟아내고 있다.

핵심 주장의 하나는 "우리측 협정문 초안의 '투자자-정부간 소송제도'가 굉장한 독소조항인데도 정부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이 제도는 투자대상국의 규제로 투자기업과 분쟁이 생길 경우 기업이 국제분쟁처리기구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것.

정씨는 "환경권·노동권 행사가 기업 이익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 제소할 수 있어 주권 침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해당국 정부에 굉장히 불리한 판결이 많이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가솔린 첨가제를 규제했다 미국 기업에 제소당해 1300만달러를 배상해줬다는 예도 들었다.그러나 이런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많다.

우선 NAFTA 체결 후 이 제도에 따라 기업이 정부를 제소한 게 42건이지만 그 가운데는 미국 정부가 제소당한 게 15건(캐나다 9건,멕시코 18건)에 이른다.

미국만 유리한 조항이 아니라는 얘기다.또 42건 중 국가가 패소한 것은 5건(캐나다 3건,멕시코 2건)에 불과하다.

특히 정씨가 예로 든 캐나다 건은 '환경권' 때문이 아니다.

캐나다 정부가 가솔린 첨가제의 국내 생산은 허용하면서 수입은 금지시켜 '내국인 대우 위반'으로 진 것이다.또 이 조항은 한·일 투자협정(BIT) 등 우리가 맺은 모든 투자협정과 칠레 싱가포르 등과의 FTA 협정에도 다 들어있다.

이런 조항이 없다면 우리 기업이 피해를 입을 경우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정씨는 22일 한국노총 강연에서 "멕시코 관료와 우리 관료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볼 때는 양국 관료들 모두 '개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처럼 얘기하더라는 것이다.

'입맛에 안 맞는 사람'만 만나게 해주더라며 약속을 주선해준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을 비난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보고 싶은 것만 보고,듣고 싶은 것만 듣다 보니 과장과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김현석 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