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시원

왜 이렇게 가슴 아프고 어이없는 일이 많은가.

수마(水魔) 피해자만으로 모자라 도심에서 발생한 화재로 10여명이 죽고 다치다니.한밤중도 아닌 대낮,그것도 10여분만에 꺼진 불에 엄청난 사상자가 난 현실은 이 땅에 안전한 방 하나 구하기조차 힘든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일깨운다.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방 한 칸의 소중함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애가 둘 이상이면 세를 못준다는 통에 방을 얻으려면 큰애는 멀찌감치 세워둔채 작은애만 데리고 들어가고,주인집 애와 싸우면 멀쩡한 내 아이를 때리며 눈물지어 본 중장년층에게 방과 집은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방만 있으면,온 식구 다리 뻗고 누울 자리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여겼다.예전엔 또 네다섯 식구,다 큰 자식과 부모가 한 방에서 복작대기도 했고,그런 방을 구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되면서 셋방은 거의 사라졌고,아파트의 경우 워낙 비싸 웬만한 목돈 없이는 전·월세 얻기도 불가능하다.

먹고 입는 건 그냥저냥 해결할 수 있지만 자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고시원 내지 고시텔이 늘어난 건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좁고 불편해도 남의 눈치 안보고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까닭이다.

보증금과 관리비 없이 월세만 내면 된다는 것도 가난한 이들이 찾는 이유다.1980년대 중반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에서 이름 그대로 고시생 공부방으로 시작된 고시원이 영세서민 숙소로 바뀐 건 IMF 이후.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이 모여들면서 급증,서울에만 3000여곳이라고 할 정도가 됐다.

작은 공간에 많은 방을 만들다 보니 대부분 출구는 하나고 복도는 좁디 좁다.

그런데도 찜질방보다 싸다 보니 불이 나면 대피하기 어렵다는 등의 안전문제까지 따질 겨를이 없는 셈이다.

고시원의 경우 운영자들의 형편 또한 빤하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대책을 갖추는 건 양심에 관한 일이다.이용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