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0일자) 왜 기업들이 증시에 돈 갖다 바치나

상장사들이 자사주 매입에 쏟아붓고 있는 돈이 증권시장에서 조달한 자금 규모를 크게 웃돌아 기업자금의 증시 역류 현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한경 29일자 1면) 기업들이 증시에 상장하는 큰 목적 중 하나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이를 투자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오히려 역기능(逆機能)만 커지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지난 상반기중 상장기업들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사들인 자사주 순매수 규모는 4조3505억원을 기록해 같은 기간의 자금조달 규모 1조8809억원 대비 2배 이상에 이른다.

2004년 이후 누적 순매수 규모도 1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장사들이 자사주 매입을 늘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첫째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목적이다.

갑작스런 외국계 자본 등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공세에 대비해 유사시 우호지분으로 활용 가능한 주식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대적 M&A에 대해 상장사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큰지는 외국계펀드인 소버린과 칼 아이칸의 공격에 의해 SK그룹과 KT&G의 경영권이 크게 흔들렸던 일이나 외국인 평균 지분율이 40%에 이르는 점만 생각해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둘째는 자본시장의 글로벌화와 함께 주주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물량이 줄어들어 주가를 떠받치는 효과가 생겨나고 이는 곧 주주 이익 확대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때문에 기관투자가 등의 회사에 대한 자사주 매입 압력은 무척 거센 편이다.삼성전자의 경우 매년 수조(兆)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을 정도다.

물론 자사주 매입은 주주 이익을 높인다는 점에서 꼭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 투자재원마저 투입해야 할 형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투자로 돌려야 할 자금을 이런 식으로 소진해 버릴 경우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어 기업의 장기적 발전 기반(基盤)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따라서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신경쓰지 않고 여유자금을 투자에 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특히 차등의결권 제도나 황금주 같은 핵심적 방어수단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는 등 경영권 보호장치의 강화는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