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없는 노동정책‥정부 언제까지 오락가락

노동행정이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책에 대한 확실한 철학과 방향 없이 노동계와 재계 학계 언론 등의 주장에 떼밀려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다.한국노총과 재계가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임금지급금지 등 2개 핵심 쟁점에 대한 시행시기를 5년 유예키로 합의한 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각계의 여론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참여정부 들어 추진해온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방안(노사로드맵)은 직권중재폐지 등으로 오히려 노사 갈등을 부추길 소지가 많다는 비난까지 일고 있다.

○여론에 따라 춤추는 정부정책정부 정책은 노동계 재계 학계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지난 2일 한국노총과 재계가 합의한 '5년유예'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던 정부는 학계가 정부의 노동개혁 훼손 등을 지적하며 부정적 반응을 보이자 수용거부 쪽으로 선회했다.

그러다 한국노총에서 반발하자 또다시 1년 유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1년 유예방안도 정부의 확정된 방침이 아니라 5년 유예를 제시한 한국노총에 협상카드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노총의 5년과 정부의 1년 중간선인 '3년 유예'를 관철시키기 위한 속셈이다.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10일 "노사정이 같이 간다는 대타협정신으로 나온다면 한국노총이 수정안으로 내놓은 3년 유예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이 장관의 이날 방송 발언에 대해 이용득 위원장이 못마땅해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노동부가 또다시 노심초사하고 있을 정도다.

학계와 재계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렴한 것으로 확신한 노동부는 지금 이 위원장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노동부가 9일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가 무산된 것도 한국노총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에 기름 붓는 정부

노사로드맵 내용 중 우리 노동현실과 가장 안 맞는 제도가 직권중재폐지와 불법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직장폐쇄 금지조항이다.

노동운동 행태를 감안하지 않은 채 노사 양측에 적당히 몇 개씩 나눠주면서 노동계가 얻은 성과다.

무분별한 노사분규를 막아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이 오히려 파업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실제 노동현장에선 직권중재 제도로 인해 잘못된 노동관행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2004년 평균 연봉 7000만원이 넘는 GS칼텍스노조가 두자릿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무모한 파업을 벌였을 때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를 직권중재에 회부,불법파업을 압박한 뒤 노동운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최근 파업을 푼 발전노조들도 직권중재로 무리한 파업을 철회한 케이스다.

파업의 명분이 약한 데다 중노위의 직권중재 회부로 노조원들이 파업참여를 꺼려한 때문이다. 직권중재가 폐지되면 막무가내식 파업이 늘어날 것으로 재계는 걱정하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