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초일류 기업의 '오너십' 리포트] (1) 독일 '밀레'‥"가족경영은 강한 주인정신으로 長期성장 추구"

"가족 경영이냐 아니냐는 기업 경영의 본질이 아닙니다.그 기업의 역사와 사업 특성에 맞게 장기적인 이익을 낼 수만 있다면 경영 형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밀레 창업주인 칼 밀레의 증손자이자 현재 공동 회장을 맡고 있는 닥터 마르쿠스 밀레(38).2004년 아버지 루돌프 밀레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그는 가족 경영과 비(非)가족 경영의 차이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그러면서 밀레 회장은 "가족 경영은 기업의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을 더욱 추구하는 특징을 갖고 있을 뿐더러 강력한 주인 의식을 기반으로 기업가 정신을 구현하는 데도 유리하다"고 자신했다.

밀레 회장은 독일 칼스루에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스위스의 세이트 갈렌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99년까지 독일의 또 다른 가족 기업인 '헬라(Hella)'라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실무 수련을 쌓기도 했다.
-밀레가 가족 경영을 고집하는 이유는.

"기업 공개를 통해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면 회사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위험성도 그만큼 커진다.남의 자본을 끌어들여 투자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위험 부담과 경영권 위협 등이 그것이다."

-무차입 경영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밀레는 창사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외부 자본을 차입한 적이 없다.순수하게 자기 자본만으로 5~1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 투자를 해 왔다.

이를 통해 밀레는 세계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튼튼한 재무 구조를 갖추고 투명 경영을 할 수 있었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지 않나.

"많은 전자회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밀레는 부엌 가전에만 집중 투자함으로써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탁기 등 가전 연구개발(R&D) 인력만 500명이나 된다.

(다른 기업에 비해) 느리지만 천천히 전진한다는 게 밀레의 경영 철학이다."

-공동경영 파트너인 진칸가(家)와의 갈등은 없나.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다소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경우엔 두 가문 간 회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다."

-가족 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협화음은 없었나.

"물론이다.

밀레의 경영권 승계 원칙은 '승계자가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적합한 자격을 갖춰야 승계할 수 있도록 심사도 엄격하게 실시한다."

-앞으로도 가족 경영을 유지할 것인가.

"그렇다.

나와 라인하르트 진칸이 경영을 맡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다음 세대까지 회사를 성장시켜 넘겨 주는 일이다.

내겐 유치원 다니는 아들과 초등학생 딸이 있다.

30~40년 뒤에 두 자녀 중 한 명에게 가업을 넘겨 주고 싶다."

-자질이 없는 사람이 승계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고 보는데.

"직계뿐 아니라 친척들 중에서 승계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리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가족 내에서 적당한 승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문제는 (내가 퇴임하는) 30년쯤 뒤에 결정될 것이다."

-전문경영인을 활용한 경영 시스템과의 조화는 잘 되고 있나.

"물론 우리는 유능한 전문경영인들을 많이 확보해 놓고 있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경영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현재 밀레는 두 가문 외에 닥터 호르스트 시벨(인사·재무 담당),닥터 에드워드 자일러(기술개발 담당),닥터 레토 바치(영업·마케팅 담당) 등의 전문경영인들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가족 기업과 비가족 기업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구분은 기업 경영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한 기업의 역사적 배경과 사업 체계가 어떤가에 따라 가장 적합한 경영 형태가 좌우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기업 형태는 단기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과 장기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이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비가족 기업들은 단기 이익을 내는 데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기업에 대한 과중한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독일의 상속세율은 50% 정도는 아니다.

독일의 상속세제는 피상속자에게 승계되는 회사가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느냐에 따라 세율을 낮춰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도 상속세 문제는 늘 논란 거리다.

아직 법안이 제출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10년간 기업이 동일한 일자리를 유지한다면 상속세를 아예 폐지해 주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밀레가 100년이 넘도록 세계 일류 기업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저력은."지금의 밀레를 이루는 힘은 세계 최고의 기술과 가족 경영,그리고 경영자와 직원들 간의 끈끈한 일체감이다.

나는 이것이 미래의 또 다른 100년을 끌고 갈 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