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초일류 기업의 '오너십 리포트'] (6) 지멘스 .. "순간의 이익위해 미래를 팔지 않겠다"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들이 많은 독일에서도 지멘스 가문은 특출난 경영자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창업자 베르너 폰 지멘스부터가 그렇다.그는 세계 전기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과학자요 발명가였다.

동시에 베르너는 "순간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팔지 않겠다"는 경영철학을 통해 기업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단기적인 이윤보다는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하고,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 오래도록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장기적인 성장의 선결과제로 꼽는 연구개발(R&D) 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미 오래 전에 실천한 것이다.

베르너 이후에도 지멘스 가족 출신의 기업인들은 유럽의 산업과 경제를 이끄는 풍운아들로 활약했다.

지멘스가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베르너와 그 후손들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 1세-3형제의 역할 조화

지멘스-할스케사(社)를 설립한 이는 베르너였지만 사실 지멘스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주인공은 그의 두 동생 빌헬름과 칼이었다.

사업에는 같이 참여했지만 세 형제의 기질은 사뭇 달랐다.맏형 베르너가 카리스마를 지닌 사업가였다면 빌헬름은 과학자였다.

빌헬름은 1844년부터 영국에 거주하며 전선 개발에 매달렸다.

1858년 지멘스-할스케사의 영국 자회사가 설립되자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과학자였다.

빌헬름이 개발한 대표적인 것은 지금도 강철을 만드는 데 쓰이는 '평로법'.그가 발명한 평로법으로 산업용 기계와 철도 레일은 물론 에펠탑에 들어가는 강철이 만들어졌다.

베르너의 또 다른 동생 칼은 형들과는 달리 '장사꾼' 기질이 농후했다.

1853년부터 러시아 사업권을 형에게서 위임받은 칼은 특유의 수완으로 러시아 전역을 연결하는 전신망 사업을 따냈다.

1888년 베르너는 전신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는다.

이에 앞서 동생 빌헤름은 1883년 사망한 직후 귀족 작위를,칼은 1895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로부터 귀족 작위를 수여받았다.

○창업 2세-최고의 기업인으로 추앙받다

베르너의 세 아들 중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이는 막내 칼 프리드리히 폰 지멘스였다.

베르너와 둘째부인 안토니에 사이에서 태어난 칼 프리드리히의 어릴 적 애칭은 '칼리'였다.

어린 칼리는 이복형인 아놀드와 빌헬름에 비해 재능이 떨어져 보였다.

아버지 베르너 폰 지멘스가 "확실히 저 아이는 학업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걱정했을 정도다.

그러나 1919년 두 형이 죽고 난 뒤 경영권을 이어받은 칼 프리드리히는 당대 '독일 최고의 기업가'로 추앙받으며 뒤늦게 기업가적 소질을 발휘한다.

그는 스스로를 '폭풍우 속의 선장'이라고 불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추슬러 지멘스라는 배를 다시금 세계적인 전자기업으로 키워내야 했기 때문이다.

1927년 독일 국가철도회사의 경영이사회 의장을 맡았으며 1931년에는 독일 전기기술협회의 초대 의장을 맡기도 했다.

정치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그는 1919년 독일 제국의회의 대표로 선출됐다.

1930년대 초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득세하자 칼 프리드리히는 "급진적인 나치가 세력을 키우면 키울수록 독일 경제는 위기에 맞닥뜨릴 것이다"라고 독일 경제계에 경고하기도 했다.

○창업 3세-단일 그룹으로

지멘스 그룹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춘 데에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의 역할이 컸다.

칼 프리드리히의 아들이자 창업주 베르너 폰 지멘스의 손자인 에른스트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지멘스를 실질적으로 재건해낸 경영자였다.

그의 영도 아래 종전까지 3개의 독립적인 지주회사로 운영 중이던 지멘스는 단일 그룹으로 통합한다.

동시에 그는 가족기업의 오랜 전통을 바꿔 전문경영인 체제를 뿌리내리는 데도 일조했다.

에른스트는 경영자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활동 후원가로도 유명하다.

1958년 그는 젊은 과학도를 지원하기 위해 '칼 프리드리히 폰 지멘스 재단'을 설립했다.1973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음악상을 제정해 음악가들을 후원했으며,1983년에는 예술후원재단을 만들었다.

에른스트의 이 같은 열정은 현재 독일 내에서 지멘스를 '사회적 책임을 가장 잘 실천하는 기업'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