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자리포트] (5) 부자를 위한 마케팅‥부자들이 국내서 마음껏 소비해야 경제에 유리

금융업계에서 성공한 부자로 통하는 A씨.'대한민국 부자 리포트'를 위해 취재팀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정색을 하며 "저는 부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말은 지난 한 달간 부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취재팀이 부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적게는 수십억원,많게는 수백억원의 재산을 가진 부자들이 스스로 부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부자들 스스로 부자의 기준을 높게 설정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부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았다.한 부자는 "국민들의 상당수가 부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상황에서 외부에 '부자로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상당수 부자들은 부자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시선이 '이율배반적'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모 기업 대표는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하면서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이 꺼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걸어야 하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부자를 질시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말했다.외국계 은행의 PB 담당자도 "사업을 통해 성공하거나 20~30년간 묻어둔 땅이 개발되면서 부자가 된 경우가 많은데 이들을 모두 투기꾼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부자에 대한 시선이 왜곡돼 있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부자들이나 그들과 거래하는 기업들만이 아니었다.

'소득 1% 기부운동' 등을 주도하고 있는 시민단체 아름다운재단의 최소영 모금사업팀 간사는 "부자들이 기부를 하면 '숨겨둔 돈이 얼마나 많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부자들 입장에서는 기부를 해도 욕 먹고 안 해도 욕 먹는 상황"이라고 말했다.한국경제신문의 부자 대상 설문에서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에 적극 기부하고 싶다'는 대답이 46.5%로 '기부는 일정 범위에서 억제하고 싶다'(53.5%)보다 적게 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당시 우량주 투자로 큰 재산을 모은 강방천 에셋플러스투자자문 회장은 "부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도 이유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당하게 쌓아올린 부는 인정하고 이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태일 현대경제연구원 컨설팅본부장도 "부자들이 국내의 부정적 시선을 피해 해외에서 돈을 쓰면 결국 우리 경제에 손해"라며 "부자들의 돈이 국내에서 풀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의 소비에 대해 좀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자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려면 부자와 국민 모두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상속과 창업 등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한강현 변호사는 "소외받는 사람을 위한 일에 국가가 모두 나설 수는 없다"며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과감하게 기부하고 이에 대해서는 칭찬하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세스 오블리제(Riches oblige·부자의 사회적 의무)와 이에 대한 사회적 칭찬이 병행돼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