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현대차노조의 同歸於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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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소설에 자주 나오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이란 말이 있다.
"종국적 파멸(盡)로 함께 돌아간다(同歸)"는 뜻.쉽게 말해 '너 죽고 나 죽자'는 죽기살기식 싸움판을 말한다.뭔가 뜻깊은 유래가 있는 고사성어는 아니지만 무협 소설 애호가들 사이에선 자주 쓰이는 사자성어다.
무협소설이 인터넷상의 온라인 게임으로 진화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 층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엊그제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최근의 현대자동차 사태와 관련한 공식 기자회견에서 '동귀어진'이란 말을 꺼냈다."종국에 가서 노동조합도 치명타를 입고,회사도 고객들의 외면으로 내수시장에서조차 '불매운동' 확산조짐이 현실로 나타나면 서로가 망하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설명이다.
민노총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었던지 현대차 노사 양측에 4개 항목의 중재안을 제안했다.
먼저 현대차에는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하고 성과급 50%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노조에도 "시무식장에서 분무기를 발사하고 기물을 부수는 등 물리적 행동을 한 것은 잘못됐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현대차 노조에 사과하라고 한 민노총의 제안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산하 단체의 노사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연대투쟁으로 앞장섰던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탓이다.이런 대응은 현대차가 노조를 상대로 사상 최대 규모인 10억원의 손배소 제기와 고소고발을 한데다 국민적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만큼 이대로 가다가는 현대차 노조가 최악의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조합원 4만3000여명의 거대 현대차 노조가 흔들리게 되면 민노총 자체도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란 절박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민노총과 사전 교감이라도 한듯 10일로 예정된 서울본사 상경투쟁을 앞두고 파업이란 초강수를 일단 접었다.
지금까지 벌여왔던 하루 2시간 잔업 및 특근 거부만 계속하면서 12일까지 회사측의 최종 입장을 들어본 후 파업여부를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표면상으로는 민노총과 현대차 노조가 최악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을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민노총이 제시한 중재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바뀐 것은 하나도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노조가 잘못한 것은 물리적 행동뿐이고,모든 책임은 회사측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했을 뿐이다.
이번 사태를 풀려면 원인제공자인 회사측이 먼저 해결에 나서라는 주문에 다름아니다.
당장 여론의 뭇매를 벗어나면서 결국은 회사측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꼼수'에 불과하다.
이처럼 민노총과 현대차 노조는 겉으로는 상황의 심각성을 말하면서도 속내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차를 단숨에 위기로 빠뜨릴수 있는 '파업'이란 무기를 주머니 속에 움켜쥐고 아직도 회사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이다.가뜩이나 어려운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20년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해온 노조 파업 때문에 안팎으로 위기감이 증폭되는 현대차.이런 상황에서 투쟁이란 단어가 과연 얼마나 더 의미를 갖는지….'동귀어진'을 푸는 열쇠는 결국 노조가 쥐고 있다.
하인식 사회부 차장 hais@hankyung.com
"종국적 파멸(盡)로 함께 돌아간다(同歸)"는 뜻.쉽게 말해 '너 죽고 나 죽자'는 죽기살기식 싸움판을 말한다.뭔가 뜻깊은 유래가 있는 고사성어는 아니지만 무협 소설 애호가들 사이에선 자주 쓰이는 사자성어다.
무협소설이 인터넷상의 온라인 게임으로 진화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 층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엊그제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최근의 현대자동차 사태와 관련한 공식 기자회견에서 '동귀어진'이란 말을 꺼냈다."종국에 가서 노동조합도 치명타를 입고,회사도 고객들의 외면으로 내수시장에서조차 '불매운동' 확산조짐이 현실로 나타나면 서로가 망하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설명이다.
민노총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었던지 현대차 노사 양측에 4개 항목의 중재안을 제안했다.
먼저 현대차에는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하고 성과급 50%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노조에도 "시무식장에서 분무기를 발사하고 기물을 부수는 등 물리적 행동을 한 것은 잘못됐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현대차 노조에 사과하라고 한 민노총의 제안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산하 단체의 노사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연대투쟁으로 앞장섰던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탓이다.이런 대응은 현대차가 노조를 상대로 사상 최대 규모인 10억원의 손배소 제기와 고소고발을 한데다 국민적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만큼 이대로 가다가는 현대차 노조가 최악의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조합원 4만3000여명의 거대 현대차 노조가 흔들리게 되면 민노총 자체도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란 절박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민노총과 사전 교감이라도 한듯 10일로 예정된 서울본사 상경투쟁을 앞두고 파업이란 초강수를 일단 접었다.
지금까지 벌여왔던 하루 2시간 잔업 및 특근 거부만 계속하면서 12일까지 회사측의 최종 입장을 들어본 후 파업여부를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표면상으로는 민노총과 현대차 노조가 최악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을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민노총이 제시한 중재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바뀐 것은 하나도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노조가 잘못한 것은 물리적 행동뿐이고,모든 책임은 회사측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했을 뿐이다.
이번 사태를 풀려면 원인제공자인 회사측이 먼저 해결에 나서라는 주문에 다름아니다.
당장 여론의 뭇매를 벗어나면서 결국은 회사측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꼼수'에 불과하다.
이처럼 민노총과 현대차 노조는 겉으로는 상황의 심각성을 말하면서도 속내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차를 단숨에 위기로 빠뜨릴수 있는 '파업'이란 무기를 주머니 속에 움켜쥐고 아직도 회사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이다.가뜩이나 어려운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20년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해온 노조 파업 때문에 안팎으로 위기감이 증폭되는 현대차.이런 상황에서 투쟁이란 단어가 과연 얼마나 더 의미를 갖는지….'동귀어진'을 푸는 열쇠는 결국 노조가 쥐고 있다.
하인식 사회부 차장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