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함께 풀어갑시다 - (4) 네덜란드의 해법] '파트 타임' 정착…출산율 상승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물류업체 라이크(Rijke)의 마르호 더 히오아트씨(38·여)는 하루에 8시간씩 주당 3일만 일한다.

히오아트씨 가정은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과1/2 벌이 가정'.남편은 전일제 근로자(풀타이머)이고 히오아트씨는 시간제 근로자(파트타이머)다.히오아트씨가 다니는 라이크는 전체 직원(1100명)의 11.5%인 126명이 여성 직원인데 이 중 상당수가 파트타이머다.

그는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 주당 20~30시간만 일하는 여성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는 동시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히오아트씨도 나머지 나흘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유연한 근무제도가 출산율 높여

1970년대 네덜란드의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여성이 평생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수)은 2.6명이었지만 1980년대를 거쳐 1990년에 이르면서 이 수치는 1.6명으로 급락했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높은 실업률과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의 하나로 '파트타임제'를 심각하게 고려했다.사회적으로 일자리를 나누는 효과를 내면서도 여성들을 경제 활동에 참여시킴으로써 이들이 돈을 벌면서도 동시에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네덜란드에서는 부부가 어린 자녀를 직접 가정에서 돌볼 수 있도록 근로 시간의 유연성을 최대한 확보해 준다는 분위기다.

특히 파트타임제는 가장 보편적인 근로 형태다.빔 콕 전 총리도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는 파트타임 비서를 고용했을 정도다.

시간제 근로 여성이 많아 다른 나라에 비해 여성경제활동 비중도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주당 1시간 이상 근로)으로 본 네덜란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비율은 65%에 이른다.

젊은 여성의 경우 이 비율은 80%까지 올라간다.

젊은 여성들의 상당수는 한 주에 3~4일만 일하고 있다.

남성 근로자까지 포함하면 네덜란드의 파트타이머 비중은 유럽연합(EU) 평균에 비해 2~3배 이상 높다.

남성 근로자 가운데 주당 35시간 이하로 일하는 비율도 21%에 달한다.

○시간제 근로자 차별금지

네덜란드가 파트타이머 천국이 된 것은 1982년 노·사·정이 합의한 바세나르 협약이 출발점이었다.

1970년대 말 오일쇼크와 세계적 경제 침체,그리고 과도한 복지 지출로 심각한 몸살을 앓던 네덜란드의 노·사·정이 서로 한 발씩 양보한 협약이다.

이 협약으로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사용자는 근로자들의 고용을 보장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며 시간제 근로자를 확대한 것이다.

네덜란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 중요한 협약이다.

객관적인 근거없이 전일 근무자와 시간제 근로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한 '동등대우법(1996)',고용주와 근로자가 다양한 형태의 근무 계약을 맺도록 촉진한 '근로시간법(1996)'등도 탄력 근무를 가능케 한 법적 토대가 됐다.

○출산율에 돈 쏟아부을 필요없다

사회고용부 해방정책조정국의 프레드릭 조지 리히터 국장은 "시간제 근무로 육아에 투자할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에 첫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는 네덜란드 여성은 고작 17%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웬만한 직장에선 일·가사 병행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근무형태가 자리를 잡으면서 네덜란드 출산율은 1.7~1.8명선에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리히터 국장은 "같은 유럽이라도 네덜란드의 상황은 시간제 근로를 법적으로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인접 국가들과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경제참여율이 아무리 높아도 공공보육 시설에 정부가 막대한 지출을 해 고출산을 유도하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제 근로자를 차별하지 않기 위해 기업이 져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한진해운 로테르담지점의 강병준 지원팀장은 "네덜란드인의 사회 정서상 전체 직원 61명 중 주당 4일만 일하는 비율이 80%이기 때문에 항상 10~20%의 유휴인력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라이크의 인사담당인 마르텐 얀 판 하설트씨는 "갑자기 네덜란드식의 파트타임제를 도입하기는 어렵겠지만 근로자들의 근무형태를 유연하게 해주는 것 자체가 출산율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로테르담·헤이그=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