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지상의 방 한칸

심영섭 < 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hanmail.net >

'네 힘으로 살아라'라는 말씀을 던지시곤 아버지는 일절 도움을 주시지 않았다.대학교 때 일이었다.

그해부터 근 20년을 지상의 방 한 칸 주위를 수없이 맴돌았다.

10평짜리 월세방엔 햇볕은 졸다 지쳐,그 곳 낮은 땅 위엔 하루 종일 그림자만 머물다 사라졌다.신혼 때는 방 앞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에 찌는 여름 남편과 '옷 입고 창문 열고 잘지,옷 벗고 창문 닫고 잘지'를 두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아이가 생겼을 때 너무 더운 날에는 골목에 돗자리를 펴 놓고 동네 엄마들이 길거리에 다 나와서 애들을 함께 놀게도 시켰다.

가난이란 그런 것이다.일종의 슬픈 폭력 같은 것인데,화가 나다가도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어서 그만 뒤가 빠지게 피곤해지는 것.대한민국에서 송곳 꽂을 땅 한 평 없이 산다는 것은 앞장으로 모자라 뒷장까지 빽빽하게 들어 찬,두 장짜리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느 라디오에서 그랬다.

집이 집이 아닌 것 같다고.어디에서 살면 더 좋을까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리어카 같다고.공중에 뜬 시멘트 상자 한 덩어리 얻으려,왜 이리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생각을 하다가도 이를 악물고 다시 돈을 모았다.마침내 빚을 잔뜩 지고 내 집이란 것을 산 날,마루를 닦으며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도 집은 나의 전 재산이면서,내가 쉴 수 있는 유일한 성채(城砦)이다.

그런데 또 집값이 들먹인다고 하고,집값이 떨어진다고 하고,어디를 청약해야 더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이제 이 땅에서 번지수의 문제는 그 사람의 인격에 앞서 한 인간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보이지 않는 문패와도 같이 작용한다.

이런 대한민국을 외국사람들은 정말 이상하게 여긴다.

독일 뮌헨에 사는 국제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은 내게 이메일을 보내 '한국 평론가들은 왜 그렇게 주소가 자주 바뀌냐'고 의아해하던 기억이 난다.

대체 누가 '집'이라는 것을 사고 되팔고 공기돌처럼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 여기는 것일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파트란 이름의 시멘트 상자에 대한 경제적 담론(談論)이 아니라 '집'이란 공간,그 신성한 공간에 대한 본원적인 윤리의식의 회복일 것이다.몇 채의 부동산(당신들에겐 집이란 말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을 가지고도 또 무엇인가를 움켜쥐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지상의 방 한 칸.그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