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매화

'연보라색 속곳 위에 흰색 겹옷 입은 모습,빙수에 꿀을 넣어 새 금속그릇에 담은 것,귀여운 어린애가 딸기 먹는 모습,매화(梅花)에 눈 내린 것.''그대 고향에서 왔으니/마땅히 고향소식 잘 알겠군요/떠나던 날 우리집 창문 앞/매화 꽃망울 아직이던가요(君自故鄕來 應知故鄕事 來日綺窓前 寒梅着花未)'

앞의 것은 일본 고전수필의 효시 '마쿠라노소시(枕草子,세이쇼나곤)'에 나오는 '고상함(귀티 나는 것)'에 대한 풀이,뒤는 중국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고향집 매화'다.이런 시도 있다.

'나 찾다가/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예쁜 여자랑 손잡고/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씨의'봄날'이다.봄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도 어느 새하얗고 붉은 매화 봉오리가 터졌다.

매화는 분류상 장미목 장미과에 속한다.살에 닿는 바람 여전히 차갑고 때 없이 잔설 흩날리는 이른 봄 피어나 '춥고 길던 겨울 지나갔음'을 알린다.

때문에 충절 혹은 역경을 이기는 강건한 정신의 표상이자 회춘(回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고결함·기품·인내'라는 꽃말처럼 꽃은 화사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향기는 은은하되 그윽하다.나무는 함부로 퍼지지 않고 어린 나무도 고아한 모습을 지닌다.

조선조 초기 문인이자 화가인 강희안(姜希顔,1417~1464)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花木) 9등품론에서 매화를 1품으로 쳤다.

꽃만 아름다우랴.열매인 매실은 구연산 풍부한 알칼리식품으로 피로회복과 숙취 해소,간기능 활성화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수확시기와 가공법에 따라 청매,황매,청매를 쪄서 말린 오매(烏梅)로 나뉘는데 오매는 설사ㆍ인후통ㆍ요혈(尿血)ㆍ혈변을 멈추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봄이라지만 봄같지 않다(春來不似春)'싶으면 매화 구경이라도 하시길.때마침 꽃바람 맞아가며 사진도 찍고 꽃잎도 줍고 소달구지도 타볼 수 있는 '매화축제'가 전남 광양시 다압면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25일까지).누가 아는가.삭풍을 견디고 핀 꽃을 보노라면 삶에 지쳐 잃었던 용기가 불쑥 솟을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