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증권사 지급결제' 한은에 백기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 허용 문제와 관련,한국증권금융을 대표기관으로 삼아 모든 증권사에 일괄적으로 지급결제를 가능케 하려고 했던 재정경제부의 당초 계획이 백지화됐다.

때문에 증권사 이용고객의 편익 향상과 증권사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겠다던 재경부의 당초 공언은 허언으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27일 금융계에 따르면 재경부와 한국은행,금융감독위원회 등은 이번 주 초께 협의를 갖고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 방안으로 개별 증권사의 은행 지급결제망 직접 참여 및 은행을 통한 간접 참여라는 두 가지 방식을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부는 이를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안에 반영,이달 말께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금융소위에 보고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 문제를 둘러싼 공방에서 재경부가 한은 및 은행권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재경부 관계자는 "한은과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가닥 어떻게 잡히고 있나

재경부와 한은,금감위 등은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를 허용키로 합의했다.증권사를 통한 지급결제란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예치해 놓은 돈(고객예탁금)에서 자동이체 송금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증권사가 지급결제를 할 수 있으려면 은행권의 지급결제망에 접속해야 한다.

문제는 접속 방식.증권금융을 대표기관으로 삼은 모든 증권사의 일괄 접속은 없던 일로 됐다.대신 개별 증권사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과 증권사가 은행을 통해 간접 참여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닥이 잡혔다.

직접 참여란 한 증권사가 A은행 B은행과 동등한 자격으로 접속하는 것을 말하고,간접 참여란 한 증권사가 A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지급결제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간접 참여는 지금도 가능한 방식이다.

직접 참여는 전산투자,입회비 등 상당한 비용이 들 것으로 증권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합의안은 증권사로 하여금 돈이냐, 종속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라며 "직접 참여를 선택하는 증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경부 왜 백기 들었나

재경부가 당초 방안을 폐기한 것은 자통법 제정안 국회 통과 시한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재경부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자통법을 다음 달 중 국회에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목표다.

원래 지난해 통과시켜 내년 중 시행하려고 했으나 자꾸 미뤄져 올 상반기 중엔 무슨 일이 있어도 통과시키겠다는 각오다.

그래야 1년 반의 준비 기간을 감안,2009년부터 시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와중에 한은과 은행권이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 문제에 강력 반대하자 자칫 자통법 자체의 시행에 문제가 될까 봐 양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재경부는 특히 재경위 금융소위가 한은과의 합의안을 이달까지 만들어 올 것을 요구하자 시간에 쫓기고 있는 분위기다.

역으로 한은과 은행권은 재경부의 이런 사정을 전략적으로 활용,지급결제 허용이라는 명분을 재경부에 주면서도 사실상 지금의 시스템과 다르지 않게 만들어 실리는 챙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식투자자 편익 제고 '글쎄'

재경부는 증권사에 직접 참여와 간접 참여의 선택권을 주는 것은 간접 참여만 가능한 현재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직접 참여를 택하는 증권사가 많지 않아 지금과 별반 달라질 게 없을 것이란 얘기다.

우선 은행계열 증권사는 직접 참여할 이유가 별로 없다.

대우 우리투자 굿모닝신한 등은 모은행을 통해 지급결제를 하면 된다.

삼성 현대 등 산업자본 계열의 대형 증권사는 '돈을 써서 독자성을 갖느냐,돈을 아끼는 대신 은행에 종속돼 지급결제를 하느냐'를 놓고 심사숙고하게 될 전망이다.

문제는 중소형 증권사.모은행도 없고 자금여력도 크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들 증권사 입장에선 간접 참여만 가능한 현재 시스템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중소형 증권사는 중소형 회사만을 대상으로 증권금융이 지급결제를 대표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할 방침이다.한 관계자는 "증권금융과 연대해 국회에 이 같은 의견을 직접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