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7월 이후만 1조2천억 샀다

현금성 자산 53조로 수급에 긍정적

백기사 확보위한 교차매입도 한몫
기업들이 국내 증시 수급의 당당한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로 자사주를 사들이는 데 치중했으나 올 들어서는 차익을 목적으로 전후방 산업이나 심지어는 별다른 연관이 없는 기업에까지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한 백기사 확보 차원에서 이뤄진 상호 지분 교차 매입도 기업들의 주식 투자를 늘린 한 요인으로 꼽힌다.전문가들은 "가계가 재테크 차원에서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것처럼 기업들도 보유 자산 운용을 위해 주식 직접 취득에 나서고 있다"며 "국내 유동성 증가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타법인 주식 순매수로 반전10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기타법인은 올 들어 지난 8일까지 569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 기간 자사주 매입은 5646억원으로 자사주를 빼고 48억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기타법인은 투신 은행 보험 연기금 등 금융 기관투자가를 제외한 일반법인을 말한다.특히 지난 7월부터 기타법인의 주식 취득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7월 이후 8일까지 기타법인 순매수 규모는 1조6000억원으로 자사주 매입 40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한 달여 만에 1조2000억원가량의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파트장은 "주가 급등으로 자금 집행을 미뤄온 기업들이 최근 조정을 이용해 주식 취득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까지 기타법인은 주식을 내다 팔기만 했다.

2002년 이후 기타법인의 순매수 규모는 자사주 매입 규모에 크게 못 미쳤다.

조용현 하나대투증권 연구위원은 "자사주를 제외하면 작년까진 사실상 보유 주식을 내다 판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타법인 실질순매도(자사주매입-순매수) 규모는 2002년 1139억원을 기록한 후 2003년 6708억원,2004년 4361억원,지난해엔 2273억원에 달했다.

◆보유 현금 운용 차원 주식투자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 법인의 현금성 자산 보유 금액은 지난해 말 현재 53조3330억원으로 전년 대비 5.67% 증가했다.

이 자금은 은행 정기예·적금이나 수익증권 등에 투자된다.

임정석 NH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기업들이 주식을 살 만큼 자금 여력이 생겼다는 의미"라며 "기업들도 자금을 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금리의 은행권을 떠나 주식 투자에 직접 나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자사주 취득은 주가 부양이나 M&A 방어뿐 아니라 기업의 자산 운용 목적도 포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사업상 전후방으로 연관된 기업에 대해서는 업황이나 실적 전망에 대해 정보 우위에 있어 투자가 용이하다는 이점도 기업들의 주식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한 이유다.

실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에스지위카스는 충남방적 주식 7만여주(95억원)를 사들였으며 한국폴리우레탄공업은 진양화학 주식 7만여주(14억원)를 장내 매수했다.

한국저축은행 등도 타 법인 주식을 활발히 매매하고 있다.

여기에 포스코-현대중공업그룹 및 거래 철강업체,신한지주-KT&G 등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기업 간 지분 맞교환이 늘어난 것도 기타법인 주식 순매수 규모를 키우고 있다.

임 팀장은 "기업의 풍부한 유동성을 감안하면 기타법인의 주식 투자는 꾸준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조 연구위원은 "기업들의 주식 순매수는 중장기 보유하는 연기금과 자금 성격상 유사해 증시 수급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