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남준 "내 어리석은 無明의 귀를 뚫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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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뚤귀뚤 귀뚜라미 한 마리.가을이라고,너 지난여름 얼마나,너 자신은 물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하여 어떤 땀을 흘리며 보냈느냐고,내 어리석은 무명의 귀를 뚫으라고 귀뚫귀뚫 귀뚫어라 귀뚜라미는 저렇게 찾아와 우는 것인가.'
2년 전 전주 모악산 기슭에서 지리산 자락의 악양 동매마을로 삶터를 옮긴 시인 박남준씨(50).그가 산중 생활 얘기를 담은 '박남준 산방일기'(조화로운삶)를 펴냈다.이번 산문집에서 그는 떠나온 옛집과 지금의 새 집 얘기를 들려주며 그 행간에 청빈의 삶과 참행복의 의미를 한겹씩 깔아놓는다.
'내가 처음 이곳에 살기 전에 빈집이었듯 다시 홀로 빈집으로 남아 누군가를 기다릴' 옛집을 돌아보다가 태풍에 부엌 지붕으로 비가 새고 아궁이에 물이 가득 고이자 '새로 이사 온 집이 어디가 어떻게 부실한지 이렇게 알려 주려는 것'이라며 새 집에서 다시 꽃피우는 희망을 얘기한다.
스스로 '관값'이라고 부르는 장례비 200만원만 가지고 살면서 조금이라도 넘치면 여기저기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산(山) 시인.먹여 살려야 할 부양가족도 없고 신문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수돗물도 없는 곳에서 그는 하루 한 끼나 두 끼를 먹으며 산다.그러면서도 마음은 부자다.
결혼은 안했지만 버들치 30여 마리가 자식으로 등록되어 있고 복수초와 물봉선,진달래,산나리,온갖 산새들이 그의 가족이며 감나무 오동나무 낙엽송 도토리나무들이 그의 식구다.
2005년 시집 '적막'에서 '길이 빛난다/ 밤마다 세상의 모든 길들이 불을 끄고 잠들지 않은 것은/ 길을 따라 떠나간 것들이 그 길을 따라/ 꼭 한번은 돌아오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던 그는 이제 '내 안의 생명과 평화,분주한 도심에서나 외딴 산속에서 더불어 살려는 내 안으로부터의 첫 걸음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시작이며 완성'이라고 말한다.'보이지 않는 길에서 보이는 길을 생각'하는 시인의 눈빛이 '꽃그늘 아래 나비' 같다.
그가 처음 이사왔을 때,처마 기둥 위의 '마을 스피커' 상자 안에 딱새들이 둥지를 튼 것을 보고 스피커 연결선을 잘라버린 일,봄날 헛간 벽 위에 올려놓은 털신 속에 딱새가 둥지를 튼 것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나무를 가지러 가지도 못했던 일 등 누구보다 여리고 맑은 시인의 심성이 책갈피마다 묻어난다.
이전의 산문집에서 '별'과 '꽃'의 이름으로 자연 속의 우리를 되비추던 그는 이제 인간 세상의 '청정'과 '혼탁'을 동시에 걱정한다.'여기에 실린 글들은 나에게 쓰는 편지요,일기와 같다.
누군가 작은 위안을 얻어 세상이 조금쯤 맑고 따뜻해질 것인가,혼탁을 더할 것인가.'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2년 전 전주 모악산 기슭에서 지리산 자락의 악양 동매마을로 삶터를 옮긴 시인 박남준씨(50).그가 산중 생활 얘기를 담은 '박남준 산방일기'(조화로운삶)를 펴냈다.이번 산문집에서 그는 떠나온 옛집과 지금의 새 집 얘기를 들려주며 그 행간에 청빈의 삶과 참행복의 의미를 한겹씩 깔아놓는다.
'내가 처음 이곳에 살기 전에 빈집이었듯 다시 홀로 빈집으로 남아 누군가를 기다릴' 옛집을 돌아보다가 태풍에 부엌 지붕으로 비가 새고 아궁이에 물이 가득 고이자 '새로 이사 온 집이 어디가 어떻게 부실한지 이렇게 알려 주려는 것'이라며 새 집에서 다시 꽃피우는 희망을 얘기한다.
스스로 '관값'이라고 부르는 장례비 200만원만 가지고 살면서 조금이라도 넘치면 여기저기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산(山) 시인.먹여 살려야 할 부양가족도 없고 신문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수돗물도 없는 곳에서 그는 하루 한 끼나 두 끼를 먹으며 산다.그러면서도 마음은 부자다.
결혼은 안했지만 버들치 30여 마리가 자식으로 등록되어 있고 복수초와 물봉선,진달래,산나리,온갖 산새들이 그의 가족이며 감나무 오동나무 낙엽송 도토리나무들이 그의 식구다.
2005년 시집 '적막'에서 '길이 빛난다/ 밤마다 세상의 모든 길들이 불을 끄고 잠들지 않은 것은/ 길을 따라 떠나간 것들이 그 길을 따라/ 꼭 한번은 돌아오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던 그는 이제 '내 안의 생명과 평화,분주한 도심에서나 외딴 산속에서 더불어 살려는 내 안으로부터의 첫 걸음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시작이며 완성'이라고 말한다.'보이지 않는 길에서 보이는 길을 생각'하는 시인의 눈빛이 '꽃그늘 아래 나비' 같다.
그가 처음 이사왔을 때,처마 기둥 위의 '마을 스피커' 상자 안에 딱새들이 둥지를 튼 것을 보고 스피커 연결선을 잘라버린 일,봄날 헛간 벽 위에 올려놓은 털신 속에 딱새가 둥지를 튼 것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나무를 가지러 가지도 못했던 일 등 누구보다 여리고 맑은 시인의 심성이 책갈피마다 묻어난다.
이전의 산문집에서 '별'과 '꽃'의 이름으로 자연 속의 우리를 되비추던 그는 이제 인간 세상의 '청정'과 '혼탁'을 동시에 걱정한다.'여기에 실린 글들은 나에게 쓰는 편지요,일기와 같다.
누군가 작은 위안을 얻어 세상이 조금쯤 맑고 따뜻해질 것인가,혼탁을 더할 것인가.'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