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앉아서 배불리는 은행 수수료

은행들의 수수료 수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창구에서 송금하거나 자동화기기를 통해 현금을 인출할 때 은행이 거둬들인 수수료가 지난 한 해에만 5조원에 이르렀다.금융감독원이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소비자들이 한 번에 몇 백원,몇 천원씩 떼인 수수료를 다 합쳐 놓고 보니 이처럼 엄청난 규모다.

은행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실제로 영업시간이 막 지난 시간에 자동화코너에서 고작 몇 만원을 찾은 뒤 1000원이 넘는 수수료가 빠져나갔다는 명세표를 받아들고서 ATM기에 분풀이를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은행들은 이 같은 수수료 수입이 결코 과도한 수준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창구 직원들을 고용하고 자동화기기를 유지하려면 수수료율이 적어도 지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좀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더욱이 미국 등 선진은행과의 수익구조 비교 자료를 근거로 수수료를 포함한 비이자부문의 비중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지난 6월 말 기준 이자부문과 비이자부문의 수익 비중이 국내 은행은 2 대 1이지만 선진은행은 거의 1 대 1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은행들의 이 같은 얘기는 일면 타당해 보인다.하지만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봐도 모순 투성이의 주장이라는 점을 금세 알 수 있다.

우선 국내 은행들은 정부로부터 면허를 받아 거의 내국인들만을 상대로 영업하는 내수기업이지만,외국 유수은행들은 글로벌 은행이다.

해외 수익의 비중이 국내 은행은 3%가 채 안 되지만 시티뱅크는 75%,HSBC는 68%에 이른다.

수수료 수입의 내용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JP모건은 수수료 수입 중 30%가 투자은행(IB) 업무에서 발생했지만 국내 은행에선 이런 수입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국내 은행들이 '앉아서 돈을 번다'는 비난을 벗지 못하는 한 글로벌화는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괜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박준동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