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에게 듣는다] (2) 사카키바라 교수 "리스크도 글로벌化…중앙은행 공조 필요"

국제금융 전문가 'Mr.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日와세다大교수

[ 대담 = 차병석 도쿄 특파원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와세다대 교수(66)의 인터뷰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가면서 10개의 질문을 준비했다.

그 질문을 모두 했지만 대답이 워낙 빨라 반시간 만에 인터뷰가 끝났다.그는 숨돌릴 틈도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속사포 답변을 쏟아냈다.

메모도 없이 통계를 정확히 인용하며 군더더기 없는 대답만 했다.

그의 인터뷰 스타일은 34년간 대장성(지금의 재무성) 관료 생활에서 익힌 것이라고 한다.국제금융과 세계경제 흐름을 촘촘한 숫자와 함께 항상 머리 속에 정리해 두었던 재무 관료 시절의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여비서의 귀띔이다.

―지난 8~9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신용 경색 우려로 국제 금융시장이 극히 불안했습니다.

최근 금융시장 불안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가격은 싸고 리스크가 큰 상품이 증권화돼 지나치게 잘 팔린 게 문제였다고 봅니다.

거기서 거품이 생겼고 그게 터진 거지요.

결국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가격이 조정돼 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동안 리스크가 큰 상품에 돈을 댔던 은행들이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하지요.

좀 더 크게 보면 10년 단위로 한 번씩 찾아오는 세계적 금융시장 조정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97년 말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꼭 10년 만이 아닙니까."

―언제쯤 서브프라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될까요.

"아마 지금부터도 6개월이나 1년 정도 더 걸릴 것입니다.

미국 주택가격 하락 정도가 관건인데,그동안 미국 집값 상승세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더 떨어질 것으로 봐야겠지요."

-문제는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신용 경색이 소비 등 실물경제에 얼마나 타격을 주느냐일 텐데요.

"그렇습니다.

아직까지는 미국의 소비가 그런대로 괜찮지만 앞으로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집값이 하락하면 주택 건설이 줄고,고용이 감소해 소비는 위축되게 마련이죠.미국 경제가 지금 2% 안팎 성장하고 있지만 1%대로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0%에 가깝게 떨어질 가능성도 있지요.

분명한 것은 금융 불안이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 영향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상당히 클 수 있습니다."

―사태를 심각하게 보시는 것 같은데요,해결책은 없습니까.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밀히 협조해 자금을 공급하고 금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의 돈줄이 갑자기 얼어붙어 발생한 문제는 돈을 쏟아부어 풀 수밖에 없죠.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비교적 잘 대응했다고 봅니다."

―중앙은행 간 공조를 강조하셨는데요,이번 서브프라임 파문은 금융 리스크의 글로벌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것도 특징이었죠.

"맞습니다.

세계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금융 리스크도 글로벌화한 것이죠.앞으로는 한 나라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에 전 세계가 공동 대처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습니다.

각국 중앙은행 간 정보 교류와 협의,공동 대응 등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죠."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급속히 청산돼 또 다른 '폭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큽니다.

엔 캐리 자금의 청산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엔 캐리 트레이드도 리스크가 큰 거래입니다.

환율 변동에 따라 큰 손해를 볼 수 있지요.

따라서 점차 청산될 것입니다.

금년 말에서 내년 3월까지는 서서히 엔고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엔 캐리 청산이 진행되고,결국 엔화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죠.개인적으로는 지금 달러당 117엔 전후에서 오르내리는 엔화값이 연말엔 110엔 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봅니다."

―일본의 비정상적인 저금리가 엔 캐리 트레이드를 유발하고,이것이 국제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늘려 고위험 투자가 확대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지나친 비약입니다.

엔 캐리 자금 중 고위험 상품에 투기적 거래를 한 돈은 많지 않습니다.

상당액이 일본의 저금리에 지친 개인투자자들 돈인데,그들은 대개 외국 투자신탁이나 채권 등 비교적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과잉 유동성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성장 등으로 인해 러시아 중동 중국 등 신흥국에서 발생한 게 많습니다.

시장에 흘러 넘치는 돈을 미국 유럽의 금융회사들이 파생상품 등을 미끼로 끌어모은 게 결국 문제를 유발시킨 것이죠."

―어쨌든 일본의 초저금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미국의 정책금리가 연 4.75%인데,일본의 정책금리가 연 0.5%라면 분명 비정상입니다.

정상화시켜야지요.

그러려면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미국 FRB가 추가 금리 인하를 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국제 공조 차원에서 맞지 않습니다.

일본 금리의 정상화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 시간은 6개월이 될 수도 있고,1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미·일 간 금리차는 줄 수밖에 없고,그런 점에서 엔 캐리 자금도 점차 해소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최근 인도 경제에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도는 거대 경제입니다.

인도 인구는 11억명으로 중국 인구 13억명과 합치면 세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죠.그 인도가 1990년대부터 중국과 같은 개혁을 추진하면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8%를 넘습니다.

올해 성장률도 9%를 웃돌 것입니다.

그런 인도에 한국의 삼성 현대 등은 비교적 일찍 진출해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기업들에 삼성 현대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동아시아 경제권이 통합된다면 반드시 인도를 집어 넣어야 합니다."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말씀하셨는데,미국이나 유럽연합(EU) 경제권과 비교해 경쟁력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이미 동아시아 경제권은 미국 EU경제권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경제적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 인구만 따져도 중국이 2억5000만명,인도는 1억5000만명,아세안 1억명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한국 대만 일본 홍콩 등을 포함시키면 중산층은 6억~7억명에 달합니다.

동아시아는 세계 최대의 공장이자 시장이 돼 가고 있습니다.

이런 큰 덩치에 아직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지요.

21세기는 틀림없이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입니다."

―한국은 중국 일본 등을 제쳐두고 먼저 미국 EU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데요.

"양자 간 FTA는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큰 차원에서 동아시아 경제통합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죠.일본이 한국보다 FTA에서 뒤진다고 하는데,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또 지금은 정부 차원의 전략보다는 민간 기업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지요.한국도 정부가 무얼 하느냐보다는 삼성이 무엇을 하느냐에 더 관심이 많지 않습니까."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