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조선통신사

다카스기 노부야 < 한국후지제록스 최고고문 nobuya.takasugi@kor.fujixerox.com >

지난 10월20,21일 서울 청계천과 시청 앞 광장에서 '한ㆍ일 축제 한마당'이 열렸다.특히 이번 축제에서는 올해로 400주년을 맞는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서 돌아와 임금에게 귀국 보고하는 기념식을 재현해 눈길을 끌었다.

조선 통신사는 1607년 시작됐다고 한다.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출병한 지 9년 후이며,도쿠가와 막부가 시작된 지 4년 후이다.이런 동난의 시기에 어떻게 조선 통신사와 같은 한ㆍ일 외교가 실현된 것일까.

이를 실현한 사람은 쓰시마 번주(藩主) 소우 요시토시라고 한다.

소우는 벼농사가 불가능한 쓰시마는 조선과의 무역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해 도쿠가와에게 건의했다.이는 천하통일 직후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고,권력기반 확립을 위해 각 번주에게 해외와의 신뢰를 과시하고 싶은 도쿠가와의 생각과 맞물려 실현되었다고 일본의 역사는 말한다.

한국 측에서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5만명에서 7만명 정도의 포로를 데리고 오기 위한 쇄환사로 보냈다고 한다.

양국의 의미는 달랐다.그러나 필자는 임진왜란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조선이 문(文)으로 무(武)를 갚는다는 정신으로 쇄환사를 보낸 대응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초 포로 쇄환을 위해 보내졌던 조선 통신사도 3,4회 이후부터는 문화 외교의 의미가 강해졌다.

1000여명에 달하는 사절단에는 유학자와 의사,화가,배우 등이 포함돼 있었다.바로 '문으로 무를 갚는다'는 정신의 표현이다.당시 정적인 일본 문화에 대륙적이고 밝은 문화를 전파한 것이다.

조선의 유학자 신유한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일본의 아메노모리 호슈의 출신지 시가켄에서는 전통적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사물놀이를 연습시켜 마을 축제 때 공연한다고 한다.또 통신사의 숙소가 되었던 각지의 절에는 당시 유학자가 쓴 한시와 고려청자 등도 남아 있다고 한다.쓰시마에는 아메노모리의 묘를 비롯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는데,아메노모리는 쓰시마 번주에게 성신교린(誠信交隣)의 정신으로 조선 통신사를 환영하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일왕 주최 만찬에서 아메노모리의 공적을 칭하며 "향후 양국 관계도 성신교린의 정신으로 상호 존중하고 이해하며 공동의 이상과 가치를 향해 발전하자"고 연설한 적이 있다.'서로 속이지 말고,싸우지 말고,진심을 갖고 교류하자'는 선인의 가르침은 지금도 국제 외교의 기본 정신이다.

우리 서울재팬클럽 회원들도 현대판 조선 통신사가 되어 성신교린의 정신으로 한ㆍ일 우호 친선활동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