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싸게 사는 고수들, 비법은 병행수입

박유경(가명)씨는 명품을 싸게 사는 '고수'로 통한다.

지난 가을엔 64만8000원짜리 '에트로 0001'이란 핸드백을 병행수입 전문점에서 23.1% 저렴한 49만8000원에 구입했다.최근엔 해외 구매 대행 사이트를 통해 일본 내 병행수입 명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259만원에 판매하는 '에르메스 가든파티 TPM '이란 가죽 핸드백을 160만원에 산 것. 이 제품은 일본의 대형 병행 수입 업체인 '엑스 셀'이 15만8000엔(약 132만원)에 판매하는 것으로 운송비와 구매 대행 수수료를 내고도 약 100만원가량을 절약한 셈이다.

특히 SK네트웍스란 대기업이 해외 자동차 병행 수입에 뛰어들면서 이른바 '그레이 마켓(grey market·정식 수입과 '짝퉁'의 중간에 있다고 해서 일컫는 말)'이라 불리는 병행 수입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최근엔 금강제화가 구찌 등 해외 명품 구두를 병행 수입으로 들여와 금강제화 상품권으로 살 수 있도록 했다.

라이선스 업체들이 직수입하는 제품에 비해 병행 수입품은 유행에 뒤처진 싼 물건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넥타이 하나를 사더라도 우아한 매장에서 점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사고 싶은 '상위 1%'의 고소득층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하지만 되도록 싼값에 수입품을 구입하려는 이들에게 병행수입은 '알뜰 쇼핑'의 기회임에 틀림없다.

◆라이선스 수입품보다 최대 40% 저렴

병행 수입 시장은 정부가 '수입 공산품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1995년 허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명품은 물론 골프클럽,스키 장비,운동화,티셔츠 등 수요가 있는 수입 브랜드라면 뭐든 병행 수입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주요 판매처는 옥션,G마켓 등 주로 온라인 몰이었지만 최근 대기업들이 이 분야에 참여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병행 수입이 주목받는 이유는 똑같은 제품인데도 가격이 최대 40%까지 저렴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서울 양재동의 '하이브랜드'가 운영하는 병행수입 명품 코너에선 '페라가모 중지갑(22-4656 검정)'을 32만9000원에 팔고 있는데 ,이를 백화점에서 구입하려면 42만5000원을 줘야 한다.

22.6% 싸게 살 수 있는 셈이다.

한 병행수입 업체 관계자는 "구찌 페라가모 프라다 등 웬만한 명품은 병행수입 상품을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29만원짜리 '나이키 골프화(SP-8)'는 병행수입 시장에서 17만∼20만원,24만원짜리 '노스페이스 700FILL DOWN 자켓'은 19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폴로 티셔츠도 백화점에선 9만원대지만 병행수입품은 6만원대다.


◆병행 수입이 싼 이유

병행 수입 업체들은 보통 현지 판매 딜러들에게 물건을 사와 정식 수입사에 비해 마진을 덜 붙이고 판매한다.

백화점 수수료 등이 필요없기 때문에 정식 수입사보다 비싼 값에 사와도 싼 값에 팔 수 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총판체제라는 유통 구조 덕분이다.

나이키를 예로 들면 유통 구조가 둘로 나뉘어 진다.

'나이키 본사ㆍ나이키코리아ㆍ한국 내 대리점ㆍ소비자'로 이뤄지는 유통이 첫번째다.

나이키코리아는 본사에 라이선스료를 지급하고 물건을 싼 값에 공급받을 수 있는 업체일 뿐,한국 내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진 않다.

여기에서 두번째 유통 구조가 나올 수 있다.

'나이키 본사ㆍ미국 내 딜러ㆍ병행 수입 업체ㆍ소비자'로 이어지는 유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병행 수입 업체들은 나이키코리아에 비해 비싼 값에 제품을 공급받지만 제품 선택에 있어선 제한이 없다.

품질이 라이선스업체가 제공하는 제품과 꼭 같다는 얘기다.

페라가모 등 명품 패션 브랜드들은 현지에 판매 딜러를 두고 있진 않지만 스위스 등 유럽 내 명품을 취급하는 대형 소매상들이 '은밀하게' 일본,한국 등과 도매 거래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짝퉁과 진품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병행 수입 제품의 단점은 '짝퉁'을 구매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다.

실제 나이키 노스페이스 아디다스 푸마 등 스포츠ㆍ캐주얼 브랜드의 경우 중국에서 생산된 가짜나 인도네시아 등 OEM 국가에서 허가받지 않고 '뒷문'으로 나온 제품들이 병행 수입 상품인 양 판매되기도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품은 본사가 원칙적으로 병행 수입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진품 여부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의류병행 수입업체인 강봉수 SAM 대표는 "터무니없이 싼 값에 내놓은 제품은 일단 의심해봐야 하고,글씨가 잘 안보이는 희미한 통관 서류를 형식상 올려놓거나 'OEM','Stock'등 진품이라면 굳이 달 필요없는 설명이 붙은 제품은 짝퉁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