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3.0 이젠 창조적 전환] (1부) ④ 디자인부터 판매까지 '저가화 기술' 무장해야

(1부) 사업분야의 전환 ④ 신흥시장을 활용하라

2000년 일본 혼다는 중국 오토바이 시장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1980년대 초반 중국에 진출한 혼다는 400개가 넘는 중국 업체들이 혼다의 3분의 1 가격에 불과한 저가 오토바이를 쏟아내자 한때 20%를 웃돌던 시장점유율이 3% 전후로 급락했다.

게다가 중국 업체들은 '홍다(Hongda)' 등 '짝퉁' 브랜드와 모델을 활용,브랜드 관리에도 애를 먹었다.

혼다는 과감히 중국 전략을 바꿨다.저가 모델을 만들기 위해 혼다의 복제부품을 만들던 중국업체 하이난 선디로(新大州)와 과감히 50 대 50으로 제휴했다.

"어차피 저가 경쟁이라면 저가 부품을 만드는 현지 업체와 제휴해 저가품을 만들겠다"며 2001년 선디로혼다를 세운 것이다.

전략은 맞아떨어졌다.선디로혼다가 출시한 첫 오토바이는 100㏄짜리 '웨이브'.가격은 4498위안(당시 미화 540달러)으로 기존 혼다 제품의 절반에 불과했다.

2000년 27%나 매출액이 곤두박질치며 30만대 수준까지 떨어졌던 혼다의 중국 내 판매 대수는 2007년 117만대 수준으로 회복됐다.

특히 중국을 저가품의 개발ㆍ생산기지로 삼아 인도와 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도 시장을 회복할 수 있었다.인도의 경우도 현지 업체인 히어로그룹과 합작해 세운 히어로혼다를 통해 지난해 398만대를 팔았다.

시장점유율 50%.혼다의 2007년 세계 판매 대수 1338만대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규모다.

히어로혼다의 베스트셀러인 '플래져'(97㏄)는 3만8000루피(950달러)에 불과하지만 혼다의 인도 내 단독자회사인 혼다모터사이클&스쿠터의 디오(100㏄)가 4만5000루피(1125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합작에 따른 저가 효과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을 잡으려면 저가화 기술은 필수적이다.

경제발전으로 이들 나라의 중산층이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갖추게 됐지만 선진국 수준의 자동차나 휴대폰 값은 아직도 비싸기 때문.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신흥시장의 잠재력은 크지만 가구당 연 소득이 5000~6000달러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제품 가격도 소비 수준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초저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흥시장의 성장 속도가 무시무시한 데다 소비층 역시 두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르노닛산은 3000달러대 차를 내놓기 위해 인도업체인 마힌드라와 합작해 인도 첸나이에 공장을 만들고 있다.

도요타와 혼다 폭스바겐 GM 등도 중국 인도 시장 등을 노려 4000~5000달러대의 차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여기에 인도회사인 타타는 1렉카(10만루피=2500달러)를 개발하고 있다.

모델명 자체가 10만루피('RS 10만')다.

송현섭 현대차 인도공장장은 "인도에서 경쟁하려면 저가차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로널드 베르거 스트레터지 컨설턴트는 1만유로 이하의 자동차가 현재 세계 시장에서 연간 400만대 정도 판매되지만 2012년이면 1800만대로 급증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휴대폰도 경쟁이 치열하다.

노키아가 전 세계적으로 2억대를 판 1100 등 50달러 이하 모델 수십개로 질주하자 모토로라는 2006년 7월 대당 50달러짜리 '모토폰(MOTOFONE)'을 출시한 데 이어,2009년엔 20달러짜리를 내놓기로 했다.

삼성이나 소니에릭슨 등도 50~100달러대 저가폰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저가화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경쟁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토 히로시 도쿄대 모노즈쿠리 경영연구센터 특임교수는 "한국과 같은 고비용국가의 기업이 저가품으로 경쟁하려면 제품의 디자인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다른 측면의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인건비를 줄이거나 수익을 축소하는 방법은 단기 처방으로 본질적 경쟁력 획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술력에 기반한 저가화를 추진하는 것만이 수익을 보전할 수 있다.

저가화에 실패한 경우는 지멘스가 대표적이다.

지멘스는 2001년 저가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기로 하고 구조조정,플랫폼 투자,생산공장 중국 이전 등을 감행해 연간 6000만대 생산시설을 갖췄다.

덕분에 지멘스의 시장점유율은 2003년 8%까지 회복됐지만 노키아가 2004년 전 모델에 대해 가격을 20% 내리자 지멘스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5%대였던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했기 때문.이는 저가화기술이 노키아에 비해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노키아의 경우 전 세계 8개국,11개 공장의 공급체인망과 연간 4억대에 이르는 대량생산능력,부품 통합 및 모듈화,저가형 플랫폼 개발 등을 통해 저가화 기술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 때문에 노키아의 전체적인 판매단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은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

지난 3분기 노키아의 대당 평균 판매가는 삼성과 LG보다 30달러 이상 낮은 115달러에 불과했지만 영업이익률은 삼성이나 LG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22%를 기록했다.

프리미엄폰에 주력하던 한국기업이 고전 중인 것도 저가화 기술이다.

국내 업체들은 노키아에 비해 플랫폼당 생산량이 부족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노키아의 플랫폼당 생산량은 2000만대 수준이지만 국내 업체들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도쿄=박해영 기자/첸나이(인도)=김현석 기자 bono@hankyung.com